정부 수립 이후 78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가 실시되면서, 단속과 처분에 앞서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지를 제도권으로 편입할 수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부상 임야로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과수·고추 등 농작물을 재배해 온 미등재 농지에 대해서는 일률적인 단속과 처분보다 실제 경작 여부와 경작 기간 등을 확인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양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공부상 임야는 산지전용 등 관련 규제가 농지보다 엄격해 실제 농사를 짓고 있어도 개발행위나 농지 전환이 어려울 뿐 아니라, 농업경영체 등록과 직불금·보조금·정책자금 등 각종 농업 지원에서도 제외되는 등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는 농지법 개정에 따라 전국 약 195만ha의 농지를 대상으로 무단 휴경, 불법 전용, 불법 임대차, 소유제한 위반 등을 조사하고 있다. 기본조사 대상 136만ha 가운데 132만ha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으며, 이 중 약 30만ha가 심층조사가 필요한 의심 필지로 분류됐다. 특히 의심 필지의 상당수가 불법 임대차로 추정되면서 농지 임대차 관행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이번 조사는 농지의 실제 이용 실태를 확인하고 농지법 위반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단순히 적발과 처분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영세 농가와 임차농까지 제도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실제로 공부상 임야이지만 오랜 기간 농작물을 재배해온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 7월 전남 광양시의 경우 매실 재배면적 1천127ha 가운데 230ha가 임야에서 경작되고 있으며, 해당 농가는 426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광양시는 임야에서 지속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인의 농업경영체 등록 기준을 개선하고, 기존 농가를 위한 경과조치와 함께 장기간 농경지로 이용된 임야의 양성화를 위한 개발행위허가와 산지전용허가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이에 앞서 정부는 2017년 6월 3일부터 2018년 6월 2일까지 ‘불법전용산지에 관한 임시특례’를 시행했다. 2016년 1월 21일을 기준으로 3년 이상 계속해서 전·답·과수원으로 사용해온 불법 전용 산지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토지를 대상으로 실제 이용현황에 맞게 지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무조건적인 양성화가 아니라 소유자의 신청과 농지취득자격, 현장 확인, 항공사진 등을 통해 실제 이용 여부를 확인한 뒤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처리했다.당시 경북 영천시에서는 300여 건의 상담을 거쳐 194건, 약 100ha의 불법 전용 산지를 양성화했고, 경주시에서도 143건, 27ha가 실제 이용현황에 맞게 정리됐다. 영덕군은 21필지 4.4ha의 지목 변경을 완료했으며, 인제군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장기간 농경지로 이용된 산지의 양성화를 추진했다. 이는 장기간 실제 농업에 이용된 토지를 일률적으로 처분하기보다 이용 실태를 확인해 제도권으로 편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이번 전수조사를 앞두고 실제 영농 여부를 형식적으로 보여주려는 이른바 ‘꼼수 경작’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4월 포항에서는 실제 경작 없이 유실수나 조경수 등을 심어 농지 형태를 유지하는 사례가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외형상 농지 관리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생산 활동은 제한적인 경우가 있어, 단순히 농지에 나무가 심겨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영농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제주에서도 지난 5월 농지 전수조사 계획 발표 이후 일부 농지에 나무를 심어 위장 영농을 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농민단체의 지적이 나왔다. 전농 제주도연맹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거나 실경작자에게 농지를 비워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며 실경작 임차농 피해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도 했다.때문에 이번 전수조사에서는 위성·드론 영상이나 현장 사진 등 외형적인 자료뿐 아니라 실제 작물의 재배 상태와 영농 활동, 경작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식적인 경작은 걸러내되, 실제 농사를 지어온 농업인이 단순한 서류상 요건이나 소유관계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농촌에서는 고령이나 질병, 경작 여건 악화 등으로 농사를 직접 짓지 못하면서 다른 농업인에게 농지를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작지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별도의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농사를 맡기는 사례도 있어, 이러한 현실을 일률적으로 불법 임대차로 판단할 경우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농지 전수조사 자체가 농지를 강제로 처분하는 절차는 아니다. 다만 조사에서 농지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처분명령이나 이행강제금 등 후속 조치가 이어질 수 있어 농업인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농지를 노후 생활자금으로 활용하려던 고령 농업인이나 농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농가의 경우 처분 여부가 재산과 금융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세심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6일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에 대해 “국민 집을 빼앗더니, 이제 농업인 농지까지 빼앗는다”고 비판하며 “무분별한 농지 전수조사를 즉각 중단하고 올바른 농정 개혁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농지 전수조사의 중단을 요구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4일 제도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이행강제금과 처분명령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투기나 고의적인 농지법 위반은 엄정하게 조치하되, 고령·질병으로 인한 경작 곤란이나 상속농지, 농촌의 관행적인 임대차 등은 일률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헌법 제121조에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있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제2항에서는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 등을 위해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인정하고 있다.문제는 농업인구 감소와 고령화, 상속농지 증가, 임차농 확대 등 농촌의 현실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경자유전이라는 원칙 자체를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실제 농업 현장에서 농지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외면한 채 과거의 기준만으로 농지를 관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따라서 이번 농지 전수조사는 단순히 위반 농지를 찾아내 처분하는 데 그치기보다 농지의 실제 이용현황을 파악하고, 장기간 농사를 지어온 실경작 농지와 영세 임차농을 제도권으로 편입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정 기간 이상 실제 농업에 이용됐고 투기 목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미등재 농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양성화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농지의 원칙을 지키는 것과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서로 배치되는 문제가 아니다. 투기와 편법은 엄격히 걸러내면서도 실제 농사를 지어온 농업인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전수조사가 농지를 처분하기 위한 조사에 그치지 않고, 농지 이용 질서를 현실에 맞게 바로잡고 실경작 농업인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현장 농업인들은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지목이나 서류상의 기준만으로 농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농민은 “수년,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땅인데 이제 와서 서류상 지목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법이라고 하면 농민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부터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또 다른 농업인은 “특히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임야 등 미등재 농지는 일률적으로 처분할 것이 아니라 실제 경작 여부와 경작 기간을 기준으로 공부를 현실에 맞게 정리하고, 제도권에 편입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번 전수조사를 계기로 실제 이용현황과 공부가 일치하지 않는 농지를 전수 확인해 현실에 맞게 정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호소했다.한국지역신문협회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