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가는 정당국가이며, 국민주권의 자리를 실제적으로는 정당 주권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정치학자 칼 뢰벤슈타인(Karl Loewenstein)의 정당국가론을 후대 연구자들이 요약·정리한 표현이다. 뢰벤슈타인은 저서 『국가사회학에 대한 논고』(Beitrage zur Staatssoziologie, 1961)에서 대중에게는 정당 지도자와 관료조직, 의회 과두세력이 헌법에 선언된 국민주권보다 훨씬 더 강한 현실성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적 주권의 소재, 즉 정치권력의 무게중심을 묻는다면 정당 과두지배층을 가리키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엄숙히 규정하고 있다. 과거 모택동(마오쩌둥)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현실 속 뢰벤슈타인의 주장은 “모든 권력은 정당으로부터 나온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나아가 우리 헌법은 제24조(선거권)와 제25조(공무담임권) 등을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엄격히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국가 권력이나 정당이 헌법을 파괴할 때 국민이 최종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국민 저항권’의 정당성까지 깊이 새겨 두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헌법적 가치들은 현실 정치에서 본연의 빛을 잃은 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고, 그 자리를 독점한 거대 정당들이 주권자의 권력을 잠식한 ‘정당 주권’의 시대가 도래했다. 민의를 수렴해야 할 정당이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고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주범이 된 현 정국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국회의원은 헌법에 보장된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뽑는 `국민 머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정치인들은 상전인 국민을 섬기기는커녕, 오직 공천 생사여탈권을 쥔 당 지도부와 맹목적인 극성 팬덤만을 바라보며 안중에도 없는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머슴들이 도리어 정당이라는 막강한 성벽 뒤에 숨어 주인의 권리를 가로채고 제 잇속만 차리는 주객전도의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기막힌 노릇은 이들의 위선적인 태도다. 국회의원들은 걸핏하면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거나 할 말이 없어 위기에 직면하면 "국민의 눈높이" "국민이 보고 있다"는 단골 메뉴로 `국민팔이`를 서슴지 않는다. 평소에는 당리당략과 정쟁에 눈이 멀어 국민을 철저히 소외시키다가도, 자신들의 안위가 위태로워지거나 사법적·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야 할 때면 어김없이 `국민`이라는 방패 뒤로 숨는다.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으면서 필요할 때만 주인의 이름을 팔아 위기를 모면하려는 파렴치한 `국민팔이 정치`는 주권자를 향한 모독이자 기만일 뿐이다.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제왕적 대통령의 독재를 막기 위해 국회 해산권을 폐지했던 민주화운동의 결실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입법부 내 다수 의석을 틀어쥔 거대 정당의 일방적인 입법 주도를 제도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국회 밖의 국민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는데도 국민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견제 장치나 소통의 통로는 철저히 차단당하고 있다.대한민국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서민과 국민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당론과 정당의 사적 이익이 국가이익과 국민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이러한 일방적 입법을 가능하게 만드는 내부 동력은 ‘정당 공천’이라는 치명적인 무기다.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와 유력 대권 주자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정치적 생명이 끝나는 구조 속에서, 의원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아닌 ‘공천권자의 대리인’으로 전락했다. 헌법이 부여한 신성한 양심적 소신 투표는 사라지고 거수기만 남은 정당 내부의 사당화(私黨化)는 정당 주권이 낳은 가장 기괴한 괴물이다.더구나 맹목적인 ‘팬덤 정치’와 극단적인 ‘진영 정치’가 결합하면서 이러한 병폐는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오직 내 편의 허물은 감싸고 상대편은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진영 논리가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거대 양당은 대중의 이성적인 목소리를 통합하기보다, 열성 팬덤의 극단적인 요구에 영합하며 정쟁을 키운다. 민주주의의 기본 미덕인 타협과 협치는 실종됐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논의가 진영 간의 진흙탕 싸움 속에 매몰된 상황이다. 헌법이 죽어가고 국민 주권이 사라져간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정당을 심판하기 위한 ‘정당해산제도’마저도 진영 간의 보복 수단이나 정쟁의 도구로 소비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뢰벤슈타인이 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주창했던 ‘방어적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가, 한국 정치에서는 서로를 궤멸시키기 위한 극단적 혐오의 언어로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신성한 참정권과 기본권이 거대 정당의 횡포 앞에 무력화되면서, 대한민국 정당정치는 이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정당이 국민의 자리를 찬탈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정당 주권’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이제는 권력 견제의 빈틈을 파고드는 거대 정당의 독점을 깨뜨릴 선거제도 개혁과 공천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이 시급한 시점이다. 정당이 국가 권력을 독점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기보다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다시 국민의 아래로 내려오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파탄 난 한국 정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다.한지협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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