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망국적 지역주의가 극복될 수 없고 국민통합과 선진국가 진입도 어렵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2월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2018년 11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쓰신 책에서 선거구제 개편이 정권 한 번 더 잡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했다"며 "역대 정치발전을 위해 애쓴 대통령들은 제1의 과제로 선거구제 개편을 얘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평소 "메뚜기 마빡(이마)만 한 나라에서 동서로 갈려 투표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제21대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전체 253개 지역구 중 163개를 휩쓸어 압승했다. 그러나 실제 득표율은 50% 수준이다. 유권자 절반의 지지만으로도 전체의 64% 넘는 의석을 차지한 셈이다. 통합당은 지역구에서 전체 유권자의 40% 지지를 받았으나 의석은 33%만 가져갔다. 두 당의 득표율 차이는 10%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163대 84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갈린 지역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득표율과 의석수간 차이가 현행 승자독식의 원칙인 소선거구제의 한계인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인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 개편해야 소선거구제는 1선거구에서 1인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로 투표방법은 1인의 후보자에게만 투표하며 다수득표자가 당선인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도의원(광역지방의원) 선거 시 선거구별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당선자 1명이 얻은 표를 제외한 표는 모두 사표(死票;선거 때 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져진 표)가 된다. 21대 총선이 1인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이어서 수도권 통합당 지지표 가운데 사표가 많았다. 그동안 거대양당 기득권 정치와 지역주의가 고착화되고 민심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도농복합형(都農複合形) 중대선거구제 도입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박형준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소선거구제를 놔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보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복합선거구, 중대선거구 등 다양한 제도가 있으니 그런 근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합선거구제는 소선거구와 중대선거구를 함께 적용하는 선거구제다. 중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2∼3인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72년 유신헌법 제정 이후 실시된 9대(1973년~)부터 제12대(1985년~)까지 총선에서 한 선거구당 2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기도 했다. 현재 시·군·구의원(기초지방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구별로 2~3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가 적용되고 있다. 대선거구제는 일반적으로 1개 선거구에서 4인 이상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적은 없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도농혼합선거구제` 우리나라에서는 `도농혼합선거구제`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도농혼합선거구제는 ▶대도시(기초)와 특별시, 광역시는 3~5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로하고 ▶중소도시와 농촌은 기존의 소선거구를 유지하는 선거구제다. 기초 대도시의 경우 행정구역을 하나의 단위로 하고, 특별시와 광역시의 경우 행정구역별로 2~3개 자치구를 합해 3~5인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도농혼합선거구제에서는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 적용 의석은 147석이, 기존 소선거구 적용 의석은 98석이 된다. 이렇게 되면 `호남=더불어민주당, 영남=미래통합당`이라는 고질적인 지역주의 구도가 크게 완화될 수 있다. 특히 중대선거구 획정과정에서 대도시의 의석수가 합리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는 물론 중대선거구에서 선출된 의원수와 소선거구에서 선출된 의원수가 다소 조화를 이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도농혼합선거구제는 열린우리당이 집권 여당이던 2005년 9월 당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이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주요 인사들도 이 방안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극복하려 했지만 아직도 극복되지 않은 지역주의 도농혼합선거구제가 시행되면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로 자주 거론되는 지역주의의 폐해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선거구제의 도입이 절실히 요구된다. 역대 정권이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지역주의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선거구제 개편을 비롯해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수차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 등은 특정정당의 특정지역 내 의석독점을 묵인하는 현행 선거제도의 개편을 통해 지역주의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지역주의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다. 유인태 전 열린우리당 정개특위 위원장은 2005년 9월 기자간담회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하나의 안이고, 그것이 어려우면 지역구는 도농복합제를 적용해 3인 이상을 뽑는 대도시는 중선거구제로, 2인 이하를 뽑는 지역은 소선거구제로 가는 2가지 제도를 논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9월 "소선거구제 플러스 중선거구제를 같이 한다든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한다든가 여러 측면에서 정치권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는 2009년 8월 "선거구가 넓은 농촌 지역은 소선구제를 채택하고,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는 이른바 도농복합형선거구제로 개편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3선 국회의원 시절인 2009년 9월 "인구가 감소되는 농촌지역과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지역에 선거구에 따른 인구문제가 있다"며 "여야간 입장차가 있을 수 있지만 창조적인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은 내놓아도 정당공천권은 내놓지 않을 것"이란 말처럼 난제 중 난제 현행 소선구제는 특정정당이 한 지역의 정치적 대표성을 독점해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뿐 아니라 소수 계층과 이념을 대변하는 정당들의 의회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 집중과 과도한 도시 비대화로 인해 국회의원의 유권자 대표성이 1개 자치 시·군·구의 1/2~1/4로 제한된 것도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하나? 첫째는 바로 지역주의 극복이다. 더이상 한 지역이 일당 지배체제로 독점돼서는 안된다. 둘째, 소선구제를 개편해 일당지배체제인 지역주의의 중심지역에 정당간 경쟁을 가능함으로써 취약지역에서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소선거 단순다수대표제와 지역구간 인구편차로 인해 발생하는 득표율과 의석율간의 차이를 완화해 표의 등가성(等價性)과 대표성도 제고해야 한다. 이같은 선거제도의 개편은 정치권과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지역주의 극복 등을 위해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이 시급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도농혼합선거구제로 선거구제가 개편되면 현행 소선거구제의 지역구 253석이 245석으로 8석이 줄어들 뿐 아니라 선거구 개편에 따라 이미 닦아 놓은 선거구를 새로 관리해야하는 등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이를 받아들이기가 힘든 실정이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0년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당시 국회 내에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을 위한 선거제도개편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며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타파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인 만큼 여야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서로 공감하는 방안부터 논의를 시작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은 내놓아도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정당공천권은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말처럼 국회의원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밥그릇 때문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도 그만큼 어렵고 어려우리라. 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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