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월(素月)이란 평을 받고 있는 문태준 시인이 최근 칠곡문협 `2017 구상문학제`에서 초청특강을 했다. `맨발` `가재미` `수런거리는 뒤란` 등 기억에 남는 좋은 작품들을 읽게 해준 시인이 작품 밖에선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였다. 행사가 열리는 칠곡군 왜관 소재 구상문학관 관수재 뜰 앞자리에 앉아 때마침 떠오른 가을 달 아래서 그의 강연을 경청하였다. 그는 지면에서 보아왔던 모습보다 키도 알맞게 크고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 단정하였다. 초청시인임에도 맨 가장자리에 없는 듯 앉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걸어 나갈 때 목례를 하는 모습이나 뒷풀이 자리에서 회원들의 술잔을 겸손하게 받는 모습, 그 사소한 몸가짐에도 소박한 예의가 묻어나서 인간적인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음성이 좋았다. 경북 김천(금릉)이 고향인 그는 소작인이었던 아버지와 가난하기에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는 어머니를 둔 빈가의 자식이었음을 서두로 꺼냈다.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가는 모습, 나무 하러 갔다가 나무를 못하면 풀을 한 짐 지고 오는데 지게작대기에 뱀을 한 마리 감고 오는 날도 있어 그 뱀을 요강단지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팔았다던가 어머니가 식전에 남의 집에 돈을 꾸러 가는 모습이라던가 자라면서 보아왔던 일상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화가 박수근이 그린 그림처럼 소박하고 맑게 연상됨은 무슨 연유일까. 그의 음성을 통해 흘러나오니 어쩐지 아련한 아름다움 같은 게 느껴졌다. 1970년생인 그가 어찌하여 1950년 이전 생들이나 겪었음직한 환경에 있었는지 의아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 대책 없는 빈곤이 그의 영혼을 맑게 하고 빼어난 시인으로 성장시켰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과나무 한 그루를 키우기 위해선 햇볕과 바람과 물과 농부의 정성이 들어가야 하지만 그건 생태적인 관점이고 그의 고향에선 저수지에서 다른 논에 물을 댈 때 물 들어 가신다고 물에게 경어를 쓴다고 했다. 그것은 자연을 공경하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 자신 시의 모태는 자연과 어머니라고 했다. 자신의 시에 근간이 되는 자연에 경외심을 갖고 시를 쓰는 것은 그런 일들을 경험의 저편에 퇴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그런 시작(詩作) 태도가 또래의 작가들과 대별되는 작가로 주목 받게 한 것일까. 그는 농촌 서정의 복원과 느림에 대한 성찰로 주목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서러울 듯한 시상 착상과 시 안에서 움직이는 순간적인 예지, 문학의 기본 소양인 우리말에 대한 공부, 언어에 이미 충실하였고 언어가 지닌 현상에 대비되는 철학적 사고로 현상에 다가가는 시인의 진심을 갖춘 문태준 시인은 2006년에는 시인과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가장 좋은시를 쓰는 시인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시인을 알고 시를 읽으면 그 시의 내연과 외연이 갑절로 확장되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의 대표작 `맨발`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 시는 어물전의 개조개 한 마리가 조갯살을 껍질 밖으로 내미는 모습을 보고 맨발이란 착상을 하였다. 가난한 가장이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탁발하듯 거리로 나갔다 돌아오는 일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 가장은 맨발이었음이 연상되어 어떤 연민의 정이 생기게 한다. 그것은 시인이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일 것이다. "아~하고 집이 울 때"라든지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는 대목이 불빛 아래서도 글썽인다. 또한 시인은 개조개가 내미는 맨살에서 아버지 뿐 아니라 부처의 맨발도 보았다. 그것은 헐벗은 아버지의 그 행위가 부처의 마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임을 유추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너무 실험적이라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 허다하고 중년의 시는 자기 탄식이나 일상의 툴툴거림이 많아 식상하다는 여론이 많은 이 때 온기가 흐르는 그늘의 이미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문태준 시인의 초청은 칠곡 문인들의 안목을 말해주는 듯 하다. 그리하여 나도 덩달아 시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음을 고백하며 감사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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