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된 소감은? 추=무섭고 두렵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부담감, 그게 거의 전부입니다. -남편이 응모하라고 적극 권유해 뜻밖의 성과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작 당선인은 신춘문예보다 문예지 당선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네, 그간 몇 차례 남편이 제 파일의 시를 훔쳐(?)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이 있었고 낙방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제 시 스타일이 신춘에는 맞지 않다라는 결론이었기에 지난 가을 들면서 문예지 등단에 뜻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본래는 욕심을 내려놓고자하는 제 삶의 방향성으로 등단을 피해왔었지만, 결국 타고난 욕망을 버리지 못해 문예지 투고원고를 퇴고 중이었지요. 그러던 차에 마감일이 임박해 다시 남편의 권유로 준비해둔 문예지 투고원고를 신문사에 제출했습니다. 아내를 살피는 눈이 참 먼 사람이었는데, 아내의 시를 보는 혜안은 어디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었나 봐요. -현대시는, 특히 신춘문예 당선 시는 갈수록 초현실적 상징성과 이미지화, 그리고 애매모호한 표현 등으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외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꺼운 부재(不在)` 당선 시도 등단한 시인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게 느껴질 것으로 보입니다. `풀꽃`이란 단시로 유명해진 나태주 시인은 "시는 누구나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당선자의 시에 대한 입장은? 추=아!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고민했던 부분이지요.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저는 답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각자 스스로 내린 시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바뀔 수 있다고 봐요. 제가 그래왔던 것처럼…. 문단에서 나태주 시인에 대한 평가는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겐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요. 저 또한 나태주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시인의 시들도 좋아 하구요. 결국 느끼고 가까워지면 그게 좋은 시 아닐까요? 시를 파헤치려 덤벼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시를 해석하는 일은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라고 봐요. 단지 모호하고 어렵다는 것은 새롭고 낯선 시에 대한 독자들의 소극적인 태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오래 시에 매달려본 결과물이 이것입니다. -이번에 심사위원이 장석주 시인과 장옥관(시인) 계명대 교수였는데 서울에서 귄위 있는 심사위원이 지방지 신춘문예를 심사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추=네, 저도 놀랐습니다. 두 분 심사위원께 제 시를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뭐라고 설명 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제게 운까지 따라주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선된 시 `두꺼운 부재`를 보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주저(主著) `존재(存在)와 무(無)`를 떠올렸습니다. `존재와 무`는 "인간 존재는 결핍이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결핍된 것을 향해 초월하는 것이 인간 존재이고, 거기서 욕망이 성립한다"라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와 무는 근본적으로 존재의 결핍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연구입니다. 너무 확대된 해석입니까? 추=이 또한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르트르를 좋아하지만 ‘존재와 무’에 대한 천착을 늘 피하고 싶어하는 한 사람입니다. 저는 향촌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바람과 달리 존재에 대한 지나친 탐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0여 년 전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는데, 터무니없게도 시에 빠져 한동안 신앙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신앙과 시와 더불어 존재의 결핍을 넘어서고자 애쓸 생각입니다. -고3 수험생이 있는 가족은 半수험생이 된다고 합니다. 시 쓰기에 주력하면서 얻은 당선의 기쁨은 그 동안 당선인과 힘든 시간을 함께한 가족과 스승 등과 함께 맛볼 수 있는 영광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추=네, 스승에 대해서는…. 저는 운전면허도 없는 겁쟁이에다 늘 골골거리는 체질에 산(山) 식구들과의 칩거가 낙(樂)인 성향이라 시의 스승은 잠시 두었었고, 혼자 공부하는 방법이 편했습니다. 시 공부덕분에 라면도 못 끓여먹던 남편이 언젠가부터 주말이면 요리프로를 즐겨보고 있습니다. 아들 수산이와 딸 항아에게도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공부하는 엄마라서 저희들도 마음뒤꿈치 들 일이 많았을 테고, 엄마의 자리에서 익힌 것들이 또한 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신춘문예가 신인들의 시작인 등단인데 앞으로 계획은? 추=후~ 우선은 겨울바다부터 찾을 생각입니다. 제게 시 공부는 학창시절의 그것과는 또 다른 중노동(重勞動)이었고,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당도 교우들도 저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산과 들과도 좀 더 살을 부비고 그 다음에 한 달 한편의 시라도 허락해달라고 청하려고요. 공교롭게 앞서 언급한 심사위원(시인)들께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주길 권유해오지만, 저는 큰 욕심 없습니다. 받은 것만 해도 과분하지요. 늘 떼만 써온 자식이었었는데…. 몸을 성실히 챙기면서 더불어 지내면서 과작일지라도 다만 시를 놓지 않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인터뷰=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 두꺼운 부재(不在) 안 오던 비가 뜰층계에도 온다 그녀가 마늘을 깐다 여섯 쪽 마늘에 가랑비 육손이 그녀가 손가락 다섯 개에 오리발가락 하나를 까면 다섯 쪽 마늘은 쓰리고, 오그라져 붙은 마늘 한 쪽에 맺히는 빗방울, 오리발가락 다섯 개에 손가락 하나를 까면 바람비는 뜰층계에 양서류처럼 뛰어내리고, 타일과 타일 사이 당신 낯빛 닮은 바랜 시멘트, 그녀가 한사코 층계에 앉아 발끝을 오므리고 마늘을 깐다 매운 하늘을 휘젓는 비의 꼬리 마늘을 깐다 한 줌의 깊이에 씨를 묻고, 알뿌리 키우던 마늘밭에서 흙 탈탈 털어낸, 당신 없는 뜰층계에서 통증의 꼬리 하나씩 눈을 뜨며 낱낱이 톨 쪼개고 나와야 할 마늘쪽들, 층계 갈라진 틈 틈으로 촘촘하게 내리는 비, 집어넣는 비, 비의 꼬리도 꿰맬 듯 웅크려 앉아 그녀가 마늘을 깐다. 묵은 마늘껍질처럼 벗겨져, 하얗게, 날아가 버리는 맨종아리의 육남매 비안에 스며 있는 그늘의 표정으로 여섯 해, 꿈속 수면에 번지던 당신 뜰층계에 불쑥 붐비는 당신의 이름, 아멘 아멘 아멘 마늘은 여섯 쪽이고 육손이 그녀 뒤뚱거리며, 오리발가락 여섯 개에 손가락 여섯 개를 깐다 세 시에 한번 멎었다가 생각난 듯 쿵, 쿵 아멘을 들이받으며 아직 다 닳지 않은 비가, 다시 여러 가닥으로 쪼개진다 ▶추프랑카 약력 1966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대학에서 국문학과 행정학을 공부했다. 2017년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경북 칠곡군 석적읍 유학산 자락에서 살고 있다. ▶심사평: 모호한 화법이지만 `여섯` 리듬의 변주 뛰어나 책으로 묶인 예심 통과 작을 읽으며 시의 균질화 현상에 잠시 당황했다. 하나의 예로, 세계를 ‘책’으로 펼치고, 일상을 ‘열람’하며, 물의 ‘문장’으로 바꾸는 환유(換喩)들은 범상한 재능으로 상투형에 가까운 것이다. 한 교재로 시를 배운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시적인 것’에 갇히면 ‘날것의 감각’과 낡은 작법(作法)을 깨고 부수는 신인의 예기(銳氣)를 드러내기 힘들다. 스무 명의 본심 대상작들 중에서 1차로 고른 것은 송현숙, 이도형, 김재희, 박윤우, 김종숙, 김서림, 추프랑카 등 여섯 분의 시다. 이 중에서 송현숙의 `박스를 접다`, 이도형의 `구름을 통과한 검은 새의 벼락`, 김종숙의 `파`를 눈여겨보았으나 상상력의 발랄함과 시적 갱신의 정도가 모자라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김서림의 `사해문서 외전(外傳)`과 추프랑카의 `두꺼운 부재(不在)`가 당선을 겨루었다. 김서림은 시를 빚는 조형력과 언어 구사가 좋았다. “물속에 파종된 햇빛” “달의 뒤꿈치에서 하얀 밤이 돋는다” “슬픈 거미들은 죽음의 전언을 행으로 옮긴다” 같이 의미를 감각화 하는 시구들은 반짝이지만, 낯익은 발상과 기성(旣成)의 영향이 어른거리는 것은 흠이다. ‘날것의 감각’이 미흡하다는 방증이다. 추프랑카의 `두꺼운 부재(不在)`는 모호하고 화법(話法)이 낯설지만, 우리는 그 낯섦을 ‘날것의 감각’으로 이해했다. 여섯 쪽 마늘, 육손이, 여섯 해, 육 남매 등에서 ‘여섯’은 잉여고, 덧나고 아픈 상처다. 시인은 상처를 화석화하고 정적인 것으로 소모하지 않는다. 이 특이점은 까고, 벗기고, 날아가고, 스미고, 붐비고, 들이받고, 쪼개지고… 등등 다양한 움직씨 활용으로 나타난다. ‘여섯’은 여러 가닥으로 쪼개지고 끝내 셀 수 없는 빗줄기로 전화(轉化)한다. ‘여섯’을 리듬에 실어 여러 겹의 의미로 변주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두 심사자는 추프랑카의 `두꺼운 부재(不在)`의 낯섦이 다른 응모자들이 보여주지 못한 시적 새로움의 징후라고 판단하면서 기쁘게 당선작에 올렸다./심사평=매일신문 심사 : 장석주(시인), 장옥관(시인·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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