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무렵, 중국 후난 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강을 따라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잃고 말았다. 무작정 배를 저으니 계곡 양쪽을 따라 만발한 복사꽃이 그칠 줄 몰랐다. 얼마를 지났을까?
산이 나타났다. 흘러나오는 계곡 물을 따라 올라가니 작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은 한사람 겨우 지날 정도였으나 계속 들어가자 동굴이 넓어지면서 갑자기 밝아지고 대지가 나타났다. 논밭, 연못, 뽕나무, 대나무 숲, 잘 닦인 길, 커다란 집, 개나 닭의 울음소리 등이 모두 이상할 게 없었으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이상향이었다. 그 곳 사람들이 어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아래 세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들은 선조들이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신하여 이리로 들어온 이후로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 인연이 끊겨 있었다. 약 500년 정도를 그렇게 지낸 모양이었다.
며칠 후 어부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이 마을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말아주시오” 당부하였다. 어부는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중간중간 표시를 해 두고, 집으로 오자말자 고을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태수가 부하를 동행시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복숭아꽃이 만발한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이야기이다. 이로부터 ‘도원경’은 이상향을 뜻하며, ‘복숭아’는 ‘천계(天界)’와 밀접한 과일이 되었다. 어쨌든 『도화원기』에 표현된 이상향은 무척 친근하지만 인간은 지금껏 한 번도 그 땅에 이르지 못했다.
‘도화동’은 이처럼 인간의 범접이 어려운 깊은 계곡 끝에 숨겨져 있다. 뒤집으면, 전국의 명산대천 가장 깊은 막장에는 어김없이 ‘도화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인간의 눈에 쉽게 띄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백험산을 넘는 영주 최고의 오지라는 마락 골짜기에서도 산길 얼마를 더 숨 가쁘게 올라야 겨우 들어설 수 있고, 전국적 오지로 손꼽히는 봉화 소천의 고선계곡 골짜기 백리장천(40km)을 다 뒤져서야 도화동이 만나지는 것이다. 영주·봉화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자칭 토박이라 하는 사람들도 이 두 도화동을 모두 섭렵한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소백산맥 너머 단산면 마락리 도화동 마을은 마락리 사람들이 소천장(부석장)을 오가던 미네치(850m) 고갯길 중간쯤에 있는 마을이다. 말이 마을이지, 고치령 길이 개통되면서 미네치 길은 통행이 뜸해져 10여호 살았다는 도화동마을은 지금 깊은 산골짜기에 한 집 억지로 남겨진 외딴 오지가 되었다.
도화동 가는 길에서는 당연히 전봇대를 볼 수가 없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속세를 홀홀 벗어나는 느낌이랄까? 길목에는 바위로 된 석문(石門)도 보이고, 나무가 넘어져 자연스러운 나무문(木門)도 만들어져 있다. 작지만 물이 통통 뛰어내리는 폭포 모양도 보인다. 가늘게 연결된 오솔길은 언제 끊어질지도 모르면서 끝내 자전거 통행까지 방해하여 물건들은 모두 지게를 이용해야 했다.
산 속 외딴집에서 이렇게 도인처럼 살아온 서낙홍 부부는 6년 전 할아버지가 별세하자 할머니는 집을 버리고 도화동을 떠났다. 봉화 소천면 고선계곡 도화동 마을은 어떠했을까? ‘삼척 구마동’이라고 불렸던 고선계곡은 남한의 「삼수갑산(三水甲山)」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첩첩산중 봉화하고도 소천면, 거기서도 가장 외지고 깊숙하다는 골짜기가 구마동계곡이며, 백리나 되는 구마동계곡 끄트머리에 도화동이 붙어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계곡에는 아홉 필의 말이 한 기둥에 메여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명당’이 있다고 하나 지금껏 아무도 이 명당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곳 지킴이 열목어는 그 비밀을 알고 있을까?
1980년까지는 이곳에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한때 도화분교 학생은 30명이나 되었단다. 지금은 도화사라는 암자 하나만이 외롭게 그 깊은 골짜기를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 20리를 걸어 나오면, 구마동의 중심이었다는 간기마을이 있다. 지금은 달랑 네 가구만이 이마를 맞대며 살아가고 있다.
도화원기의 ‘무릉도원’에 해당하는 곳을 도교에서는 ‘동천복지’라는 말을 쓴다. 경승지에 신선의 ‘낙원’이 숨겨져 있다는 사상이다. 즉 ‘동천(洞天)’은 동굴 속 별천지를 말하고, ‘복지(福地)’는 각종 재앙이 닿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이들 동천복지는 모두 땅속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마락리의 도화동과 고선계곡의 도화동도 땅속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