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세 번째 시집 『미니멀 라이프』가 천년의시작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이해리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장면들을 포착하여, 매 장면들을 훌륭한 서정으로 표현해낸다. 다만 이런 일상의 장면들에서 서정적인 감상만 이끌어내고 끝내지 않는다. 장면의 서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의 체험 속에서 깨달은 일상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엮어낸다. 때로 이런 깨달음은 개인사(個人史)를 벗어나, 현실 사회의 문제점에 닿기도 한다. 도시화, 문명화를 통해 나타나는 소외 문제와 난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에 대한 씁쓸함을 시적 표현을 통해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다. 시, 문학이 단순히 서정을 이끌어 내거나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단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 일상의 발견을 서정과 현실의 문제로 연결해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훌륭한 시집이다. 이해리 시인은 첫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2005)에서 이미 자기 시의 한 절정을 보여준 바 있다. `애수적 미`(哀愁的 美)의 추구에 주력했던 첫 시집에 비해 이번 세번째 시집 『미니멀 라이프』는 애수적 서정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깊어진 통찰과 날카로운 현실의식이 눈길을 끈다. 난폭한 이 비언어의 시대, 문학은 근본적으로 현실의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이번 시집의 이해리 시는 모범적인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시집평 김용락 시인·경운대 교수 이른 봄 진달래 가지에 달린 주먹만 한 새집이 눈을 당긴다 풀잎 총총 엮은 둥글고 옴팍한 둥지 안에 새는 보이지 않고 가랑잎 하나가 잠들어 있다 수없이 물어다 날랐을 풀잎 틈틈 콩알만 한 돌멩이도 이따금 끼워놓아 집 짓는다고 애 먹었을 새의 작은 심장과 가엾은 날개를 생각케 한다 산 아래 사람의 마을에선 투기열풍 한창인데 이렇게 공들여 지은 집 부동산에도 안 내고 새는 어디로 갔을까 미니멀 라이프! 지상의 어느 등불 어스레한 마을에선 소유하지 않으면 더 풍요로워진다는 걸 알아차린 이들이 있어 가진 것을 미련 없이 버린다는데 버린 것을 서로 축복한다는데 새도 그 대열에 끼어 갔을까 푸른 잎 화사한 꽃 아직 안 피어도 빈 둥지 안 맑은 바람 살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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