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사령관의 출전 명령으로 일본주둔 미군선발 `스미스 특수임무 대대`가 7월5일 첫 오산전투에 투입 540명 중 18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즉각 미24단 본대가 조치원에 포진되었지만 무적 T34탱크를 앞 새운 인민군의 파죽지세에 속수무책 금강 방어선 대전 사수가 어려웠다. 적군은 밀려드는 피난민 행렬 속에 특공대를 조직 소달구지 지게에 무기총포를 실어 위장하고 아기 밴 여자로 둔갑 수류탄을 머리에 이고지고 후방에 침투 교란하면서 민심의 동요는 물론 수많은 피난행렬 위협 때문에 국군과 미군은 불안한 공포에 휩싸였다. 대전 사수 특명에도 견디지 못한 사단장 딘 소장은 후퇴 명령을 내리고 다급하게 시내를 빠져나왔으나 운전병이 한국지리에 익숙하지 못하면서 길 잃은 36일 만에 적군에 생포된 치욕을 당하고 설상가상 미군 24사단병력 30%이상 사상자가 발생 미국의 자존심이 크게 짓밟혔다. 대전함락 직전 피난정부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용단을 내려 국군 통수권을 맥아더 사령관에 이양하면서 낙동강 방어벽과 왜관낙동대교의 관문 삼총사고지(328,303 268고지)중심 축으로 포항 마산을 연결 연합작전 워커라인 사선을 구축했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고 한때 다부동 유학산이 점령당해 장사포가 대구시내에 떨어지자 임시정부가 부산으로 대피하고 피난민과 시민들은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미군 또한 위기에 부닥치자 울산과 밀양 마산을 연결 `데이비슨 라인`을 다급하게 신설하고 미군과 유엔군을 일본으로 철수는 물론 대한민국 망명정부 해외 이전계획을 주권국 이승만 대통령도 모르게 구상했다. 가난한 나라백성은 이름도 성도 없다면서 이대통령은 통탄하고 민족의 자존인 국군통수권까지 바치면서 오직 자유민주 대한만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을 뿌리치고 몰래 철수한다면 나를 쏴죽이고 떠나라면서 불같은 용트림 애국심으로 호신용 권총을 허리에 풀자 당황한 미군 사령관과 대사는 결사항전 다짐과 함께 머리가 숙연한 풍전등화의 참담한 나라현장 이었다고 한다./향토사학 곡촌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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