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산성의 별칭인 고향 기성(箕城)에서 태어난 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전국 사찰의 승병을 지휘하고 불교탄압 척박한 유교조선 고난의 시대에도 조선최고 스님인 서산대사의 법손으로 신라고찰 가산산성 송림사를 시작 구산선문 팔공산 동화사 중심으로 호국불교 정토사상을 크게 펼친 칠곡의 대표적 고승이며 법명이 기성으로 법호가 쾌선 이다. 기성대사는 가산산성 수문장 총섭대장 근화 스님과 함께 호국 불교 칠곡 향토사에 대표적 승병대장과 걸출한 선승의 인물이라 하겠다. 경산지(京山誌)에 조선불교는 배불억제 정책에도 송림사는 세종대왕 조에 선종(禪宗)교종(敎宗)양종 36본산으로 점지 불교계의 중요한 위치였지만 임진왜란 정유재란 양대 국난을 겪으면서 송림사 사찰이 대부분 소실되고 5층 모전석탑만 방치되어 절의 명맥만 유지되었으며 민가들이 사찰주위의 땅을 점유하면서 문종이를 제작하여 나라에 상납하는 산촌마을로 바뀌었다. 참혹한 나라 난리를 겪으면서 유비무환 가산산성을 신축, 산성 내에는 경상감영 역할 칠곡도호부 군사행정 복합 청을 개청하였으며 영남대로의 요충지 길목으로 한양과 부산포에 이르는 역참물류 중심 다부원(多富院)과 함께 송림사 사찰에 사신숙소 역할을 겸하여 숙종12년(1686년) 왕명으로 기성대사가 대대적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명부전 기타 부속건물을 중수하고 임금의 친필인 대웅전 현판이 현존 귀한문화제로 지정되었으며 송림사는 칠곡 고을에 제일 많은 불교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송림사 경내 외진 곳 구 도로변 언덕배기에 기성대사의 공덕비가 세월무상 힘겨움에 비각의 기왓장과 단청이 퇴색되어 폐사 지처럼 보기가 민망하며 주위엔 옹기종기 옛 스님의 청 태 이끼를 덮어쓴 부도 탑들이 낙엽에 휨 쓸린 외로운 모습으로 나그네의 허전한 마음 온고지신(溫故知新) 아쉬움을 더하게 하고 있다. /향토사학 곡촌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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