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생일선물, `문상` 문화상품권 `금사빠`… 금방 사랑에 빠지다 `여병추`… 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 `ㅅㅂㄴ` `ㅇㅁㅂ` `ㅇㅂㅊ` `ㅇㅈㄹ`. 요즘 청소년 사이에 사용되는 문자인데 이게 무슨 뜻인가? 올해 569돌을 맞는 한글날, 한글파괴의 현주소이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쉽게 만든 한글이 오늘날 되레 어렵게 돼가고 수난을 당하고 있다. `×발놈(년)`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여병추(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이지랄` 이다. 욕을 은폐하기 위해 모음이 탈락된 측면도 있지만 그저 의미 없는 자음의 나열이 아니다. 청소년 사이에 통용되는 이 숨겨진 욕인 이 은어는 짧은 역사를 지닌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를 줄여 `이뭐병`으로 사용하다가, 이것도 복잡하니 `ㅇㅁㅂ`로 자음으로 축약한 것이다. 다른 문자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현상은 글자를 적게 빨리 치려는 인터넷 언어의 특징을 반영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휴대전화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10어절에 한 번 이상 비속어와 은어 등을 마구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온라인 게임 등에서 문자 메시지, 댓글 등을 통해 좀 더 의사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호기심을 발동하게 하는 인터넷 용어는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지난 6월 13세 이상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언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52.5%가 ‘언어 사용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청소년들의 비속어, 신조어 사용’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좋게 말해 신조어지 청소년 자신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멋대로 줄여 만든 `축약어`이다. 실례를 들어보면 엄마가 오늘 내 `생선(생일선물)`으로 `문상(문화상품권)`을 주셨다. 이 정도는 자녀와 문자나 대화를 자주 나누는 엄마들도 알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활필수품을 줄여 생필품(국어사전에도 나옴)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 것) `화떡녀(화장을 떡칠한 여자)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 등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멋대로 조작한 이같은 축약어가 청소년들의 일상어가 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쓰고 난 후 남은 나머지의 의미인 잉여(剩餘)는 `아무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사람`으로 어의(語義)를 바꿔 사용하는 것은 물론 상상하기 힘든 합성어와 비문으로 한글과 국어가 심하게 아파하고 있다. `애잔보스(애잔하기가 보스boss급, 매우 안됐다)` `극혐데스(극도로 혐오스럽다) 등은 영어와 일어를 조합해 만든 합성어이다. 단어를 다 치기가 귀찮고 친구끼리 재미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반 전화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이 없었던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면전(面前)에서는 이같은 비속어와 축약어를 사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과 세계 최고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초고속인터넷 및 페이스북, 카톡, 밴드를 비롯한 SNS, 맞춤법을 무시한 메시지, 말장난 위주의 TV 예능 프로그램 등이 극도로 축약된 표현이나 이같은 언어파괴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 자음과 모음으로 글자를 이루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간편한 의사소통을 앞세워 문자탈락 현상으로 심화되면서 점차 세대간 소통을 가로막는 불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청소년들의 언어가 파괴되면 이들의 가치관-문화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언어철학자 훔볼트가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고 지적한 대로 언어는 의식과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기형적인 언어사용 습관을 개선해 나갈 강력한 `천사의 언어`는 하늘에 있는 것일까? ◆한글은 한자음을 적기 위한 창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지난 9일은 제569돌 한글날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훈민정음 곧 한글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특히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이 한자음을 적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위에 적은 세종이 직접 쓴 《훈민정음》서문에 보면 창제의 첫 목적은 분명 백성 사랑이다. 백성 모두가 글자를 배워 세상과 소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 그것은 절대군주 세종이 자신은 물론 양반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오해의 또 한 가지는 훈민정음이 파스파 글자를 모방에서 만들어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는 파스파 글자가 천지인 철학이 담긴 훈민정음과는 전혀 다른 것에서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훈민정음》해례본에 한자음 적기가 창제의 동기라는 것은 아예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파스파 글자에 대한 얘기도 전혀 없음을 보면 이 두 가지 주장은 근거가 없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글, 우리는 그 한글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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