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거동과 언행을 자세히 기록한 `승정원일기`에는 영조 임금이 최초의 한글 소설인 김만중(1637-1692)의 `구운몽`을 세 번 읽은 것으로 나옵니다. 맨 처음은 58살 때인 1751년으로 영조는 중국의 로맨스소설인 `평산냉연`에 대해 물어본 뒤 갑가지 `구운몽`의 지은이가 누구인가를 물었습니다. 이에 신하들이 ‘김만중’이라고 하자 영조 임금은 `구운몽`의 지은이가 당시 문장가인 이의현(1669-1745)인지 알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구운몽도`를 연구한 정병설 교수는 “그만큼 영조임금이 구운몽의 문장이 우수하다고 본 것” 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구운몽`의 지은이가 서포 김만중인지 알지만 조선시대에는 `구운몽`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있지 않아 임금조차도 그 지은이를 쉽게 알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영조 임금이 처음으로 구운몽 지은이에 대해 물어본 뒤 십년 쯤 지난 어느 날 또 다시 `구운몽`에 대해 신하들에게 물으면서 “ `구운몽`이 문장 솜씨가 있고 좋은 글”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구운몽`은 영조 임금만 좋아한 게 아닙니다. 당시 수많은 문인들도 `구운몽`을 좋아했고 춘향전 등에도 `구운몽`이 인용되었을 뿐 아니라 19세기 황해도 해주 기생은 자신의 반생을 돌아보는 노래에서 자신의 신세를 `구운몽`에 등장하는 기생 계섬월에 빗대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인치고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는 고전문학 `구운몽`은 궁궐의 임금으로부터 기생에 이르기 까지 조선의 각계각층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최초의 국민문학이라고 정병설 교수는 말합니다. 특히 구운몽은 해석에 필요한 관련기록이나 자료가 많지 않아 `구운몽`을 소재로 한 그림인 `구운몽도`는 `구운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하지요. 현재 `구운몽도`를 40여점 모은 정별설 교수는 이 그림을 통해 한국인들이 `구운몽`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