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피난살이에서도 우리나라의 장차 주인공인 청소년학도들은 학구의 정열을 잃지 않고 있다. 기다리던 환도도 이번 해가 가기 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움을 알아 임시수도 부산에 모인 서울의 각 피난학교들은 겨울 날 준비를 급작스럽게하여 대학부터 국민학교에 이르기까지 해변가 또는 산비탈 등에 터를 잡아 천막 또는 판자로 가교사를 지어 지낸다. 남쪽이라 겨울 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 혜택을 받아가며 수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51년 12월 16일 자유신문 기사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날은 춥고 먹을 것은 떨어진데다가 서울로 돌아가 날을 기약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각 급 학교들은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 눈물겹습니다. 한국전쟁은 인명살상, 건물파괴, 전쟁고아, 배고픔, 폐허더미, 높은 실업률, 이념갈등, 혼란과 같은 말을 쏟아놓아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겨레의 가장 무서운 비극으로 물질적, 정신적인 손실 말고도 나라가 분단되는 쓰라린 아픔의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위 기사가 있기 한 달 전쯤인 1951년 11월 1일 자유신문에는 “한국동란 발발 이래 미국 내에서는 전황의 신속 정확한 정보를 듣기 위해 라디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현재 미국 안에 있는 라디오 수요는 전 인구의 숫자보다도 많아졌다고 한다. 금년에 팔기 위하여 제작한 미국의 라디오 생산 대수는 1,459만개인데 이 중 가정용 수신기는 팔린 것이 817만 4,600 대 그리고 휴대용으로 팔린 것은 167만 4,000 데나 되는데 다 팔려서 그 전 재고품까지 2만 대나 더 팔렸다고 한다.” 는 기사가 보입니다.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참전 역시 수많은 희생을 가져왔던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도 어언 64년째입니다. 한반도를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민족의 비극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하지 않을까요?/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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