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확산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민주화를 거친 체제인 제6공화국(노태우 전 대통령) 헌법을 개정해 새로운 미래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두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최근 "37년이나 된 6공화국 헌법은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시대적 명분은 12·3 계엄 선포 사태를 통해 대통령 1인에게 권한이 너무 쏠린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에서 찾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한 의원 내각제, 이원 집정부제,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 등으로 권력 나눠먹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가 국가를 망가뜨리고 있어 개헌을 통해 권력의 분산 등으로 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7년 제9차 헌법개정에 따라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와 국회의 국정감사권 부활로 제왕적 대통령제는 어느 정도 권력 분산이 된 셈이다.
윤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 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이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와 함께 국회가 자신을 내란죄로 몰고 가면서 탄핵소추에 돌입하기 전에 국회를 해산했을 것이다.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각각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탄핵 절차와 행정부의 국회 국정감사만으로 대통령의 독주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은 입법부와 대통령병에 걸려 있는 대선 주자들의 과욕이 아닌지? 물론 `승자독식`에 기반을 둔 현행 5년 단임대통령제에서는 대권(大權)만을 바라보며 대결과 정쟁(政爭)을 반복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전·현직 대통령의 탄핵·수사 등을 겪으면서 개헌에 적극적이다. 윤 대통령 탄핵 표결을 앞두고 지난 12월 14일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지금은 대통령제를 탄핵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헌정사상 세 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후 여당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시·도지사), 원로까지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은 개헌 논의보다는 윤 대통령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중심제가 과연 우리의 현실에 잘 맞는지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미군 철수 등 자신이 꿈꾸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안고 있는 각종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윤 대통령을 시급히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을 치뤄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은 고유한 권한인 특별사면권 등을 마구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대표가 독주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대권가도에 제동을 건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지난 19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 너무 집중된 권력 때문에 여러 오판이 생길 수 있어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 권력 분산과 국회 권한 강화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윤 대통령의 일이 헌법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라며 "지금 헌법으로도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 의장은 "나는 원래 개헌론자"라며 "1987년 개헌 이후 40년 가까운 시기의 변화를 헌법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지난 12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원집정부제, 양원제 등 국가운영체제 교체를 통해 초일류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철우 도지사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을 설득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바꾸었더라면 오늘의 불행을 방지했을 것이다. 2017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충격과 반성으로 헌법개정특위가 구성됐으나 무산돼 오늘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대통령제 정부를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꿔야 한다"며 "OECD 38개국 중 30여개 나라가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민주 선진국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방·외교를 주로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또 지역 균형 발전 도모와 수도권 일극체제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양원제 국회를 도입하고 상원을 시·도별 대표로 구성해 힘의 균형과 함께 지역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는 행정부의 권한을 대통령과 내각수반이 나누어 행사해 권력이 이분화되는 정치형태다. 순수 내각제라면 대통령이나 국왕이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만 가지고, 행정의 전권은 내각수반인 수상이나 총리에게 귀속된다. 반면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은 보통 국민직선으로 선출돼 평상시 외교·국방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며, 전쟁 등 비상시 긴급권에 의거해 행정전권을 위임받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원집정부제는 의회(국회)가 내각에 대해 불신임권을 가지고, 내각은 국회해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의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정치발전이 뒤떨어진 나라의 경우 대통령에 부여된 긴급권의 남용소지가 크고 내각과 의회 간 잦은 불화로 정국불안정이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