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북삼면 율2리 662번지, 경북 칠곡군 북삼면 율2리 610번지. 우리 부부는 같은 마을 이웃에 살았었다. 설, 추석 명절이면 서로 음식을 나누고 때때옷을 자랑하며 해 지는 줄 모르고 골목에 모여 술래잡기를 하던 또래 친구였다. 겨울이면 미나리꽝에서 썰매를 타고 홍수가 지는 여름날이면 업어서 도랑물을 건네주던 두 해 상급생 든든한 선배이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너무도 많은 사연들을 뒤로 하고 나는 고향을 떠났다. 어머니가 오랜 지병으로 돌아가시자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삼시 세끼 따순밥 나누며 오순도순 행복했던 우리 가족들은 뿔뿔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가끔 씩 기차를 타고 경부선을 지나 칠 때면 인근 정거장을 지나기 전에 내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약목 폿대걸(정거장 표시전봇대)을 지나 옹기전걸(옛날 옹기를 굽던 곳), 경호천 내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질펀하게 모여 앉은 내 고향 들배미! 육반, 안골목, 갱마(강변마을), 첫째 집은 인수 네가 살았고 우리 집은 갱마 앞 쪽에서 두 번째였다. 동쪽으로 나지막이 사립문이 나 있고 집 옆으로 도랑물이 사시사철 돌돌돌돌 속삭이며 흘러내렸다. 안채, 사랑채, 우물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고방(장독대), 제일 큰 장독 위엔 정화수 바쳐놓고 여섯 남매 건강과 성공을 빌어 주시던 우리 어머니. 징 장구 짊어지고 세상을 누비며 사랑하는 가솔도 깜빡 잊고 사시는 무정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허구한 날 가슴을 다독이셨을 우리 어머니. 동생과 함께 무논(물이 있는 논)에서 누렇고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직한 미꾸라지를 한 양동이 씩 건져오는 날은 어머니는 걸쭉한 추어탕을 서말지(서 말 드는) 가마솥에 철철 넘치게 끓이셨다. 언근이, 종구아재, 약국댁, 갈개댁, 연산댁도 모자라 철둑 넘어 작은 아버지 댁까지 추어탕 주전자 나르면서 깡충깡충 신바람이 났던 어린 시절. 장맛이 달다며 심심찮게 들리시던 약국 댁 마나님, 뒷집 정미소 기순이 엄마 부부싸움 소리도 귀에 쟁쟁하다. 미술 시간마다 그리던 금오산 짚동바위, 해가 저물도록 봄나물꾼들이 줄을 이었던 바우람산(영암산) 기슭, 새벽녘이면 늑대들이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펄펄 뛰어 놀던 어부골 당산나무 어귀. 지금은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던 시골 풍경도, 다정하던 사람들도 모두 다 사라지고 크고 작은 공장들과 상가들이 이국(異國)땅을 연상케 한다. 자고 나면 치솟는 아파트와 갱변(강변) 쑥밭 땅값마저 금오산 봉우리와 버금간단다. 북삼국민학교 제13회 동기생, 안순이, 대실 영자, 재임이, 겉도랑가 태원이, 인평에 창자도 그립다. 그보다 더욱 맘 아픈 것은 밤톨 같은 명식이, 사람 좋기만 하던 춘환이 그리고 몇 몇 동기생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다. 양지쪽에 앉아서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는 동기생 우식이 “내가 누군데?” 하고 물으면 “용수이 아이가, 용수이!” 그래도 내 이름 석 자 기억해 줘서 반갑고도 안타깝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고 했든가, 우리 부부 아이들 다 키워 놓고 퇴직하면 꼭 고향 가서 금오산 바라보며 살자던 약속이 못 내 목구멍에 가시로 돋아 고향 떠난 지 반세기도 훌쩍 넘은 지금 나는 홀로, 나 홀로 나마 고향으로 돌아왔다. 옛날 등 넘고 산 넘어 숨어 앉았던 강진 마을, 그 산 자취도 없이 아파트 숲으로 바뀌고 그 귀퉁이 한 쪽에 어설프게 웅크리고 앉은 나는 밤낮으로 금오산 빤히 바라보며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은 왜 해 놓고…’ 내 잔소리 듣지도 보지도 못 하는 무심한 남편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가마득히 멀리 펼쳐진 배미 뒤뜰 평야(어린 시절에는 들이 너무 넓어 평야처럼 보였다)는 경부선 KTX 기차 선로가 그 한 가운데를 38선처럼 뚝 잘라 놓았다. 금오산 기슭 굴속을 수시로 사라지는 기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버린 세월이 저 기차만큼이나 야속하고 서럽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 고향 으로 돌아가 금오산 바라보며 살자던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소망마저 이루지는 못 했지만,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여생을 분주히 그러나 열심히 살아 볼란다. 오늘도 나는 배미 뒷들 한가운데 석가래 서너 개 듬성듬성 걸치고 서말지 가마솥 덩그렇게 걸어 놓고 목마른 사람 시원한 물 한 바가지 건네고, 배고픈 사람 따뜻한 잔치국수 한 대접 말아 주는 날이 내 생전에 꼭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멀지 않아 금오산 등성이에 흰 눈 녹으면 진달래도 피고 철쭉도 만발하겠지. 나는 술독에서 갓 걸러 낸 막걸리를 푸짐하게 퍼 담고 진달래 화전을 곱게 붙여 내 소꿉친구들 불러 모아 오래 만에 젓가락 장단에 맞춰 ‘고향무정’ 한 가락 뽑아도 좋겠다. 글 · 이용순 -경북 칠곡군 북삼읍 태생 -영남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대한교원신문 새교실 시 천료 창조문학, 아동문학평론사 신인상 수상, 농민 문학상 수상 등 -전직 교사 전 중국 광동성 광주시 판위한글학교 교장 전 중국 광동성 광동외어외무대학교 외래교수(한국어)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대구아동문학회, 칠곡문학회, 대구기독문학회원 -현 안다미로 귀때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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