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찍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말로 널리 알려진 이 문장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유권자의 한 표도 중요하지만, 그 표가 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관리되고 집계된다는 국민의 신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완성된다.그러나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이러한 선거 관리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흔들고 있다.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공직선거법 위반과 참정권 침해 논란으로 번진 이번 사태는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지며 법적·정치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이번 논란의 핵심은 공직선거법 제150조 제10항과 제151조 제1항 위반 여부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제10항은 "투표용지에는 일련번호를 인쇄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김미영 VON 대표는 투표 현장의 선거인명부 서명을 부정선거 여부를 가릴 핵심 증거로 지목하며, 이를 수사하면 쉽고도 분명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표자는 투표소에 들어서면 신분 확인 후 선거인명부에 기입된 자신의 이름 옆에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어야 한다.▶투표용지 관리와 선거인명부, 법적 절차 지켰나?투표소에서 선거인이 직접 한 서명은 조작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다. 실제 투표 인원과 명부상의 서명 숫자를 대조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공직선거법 제151조 제1항은 "투표용지와 투표함은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가 작성하여 선거일 전일까지 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하고, 이를 송부받은 읍·면·동선거관리위원장은 투표용지를 봉함해 보관했다가 투표함과 함께 투표관리관에게 인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는 투표용지가 선거일 이전에 작성과 봉인,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 관리되도록 함으로써 선거 당일 임의의 변경이나 조작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핵심 규정이다.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일부 투표소에서 일련번호가 인쇄되지 않은 예비투표용지에 번호를 손으로 적어 사용한 사실이 알려졌다. 투표용지가 부족해지자 선거 당일 전국 투표소 140곳에 추가 송부가 이뤄진 것이다. 이 가운데 투표소 91곳에서는 실제 투표에 추가 용지가 사용됐다.중앙선관위는 이를 "실무상 업무 관행"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조계는 내부 편람이나 관행으로 상위법을 변경하거나 예외를 둘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투표용지, 일련번호로 철저히 추적·관리해야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투표용지 부족 원인과 배분·인계 과정에서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여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하며, 위법성이 확인될 경우 국가배상 책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황도수 변호사는 "투표용지는 인쇄소에서 출고되는 순간부터 선관위를 거쳐 투표소에 인계될 때까지 일련번호로 철저히 추적·관리돼야 한다"며 "선거 당일 추가 배부와 일련번호 수기 작성은 법률 취지와 배치된다"고 강조했다.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6일 6·3 지방선거 부실 관리 논란에 휩싸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개헌을 통해 해체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상임화와 감사원 감사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민주당 국민 참정권 수호 선관위 개혁 태스크포스(TF)의 송기헌 단장은 이날 "헌법 개정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를 해체하겠다"며 "선관위가 국민의 참정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헌법기관이 되도록 선관위 명칭과 구성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제도와 운영 방식이 반복된다면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만여 장 투표지 남아 충격, 무번호 투표용지도 무분별하게 배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지난 18일 6·3 지방선거 당시 서울 송파구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정작 송파구선관위에는 본투표 종료 후에도 4만 2,747매의 잔여 투표용지가 그대로 보관돼 있던 실태를 폭로했다.이어 국회 선관위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가 지난 2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를 전격 방문해 현장 조사를 실시한 결과, CCTV가 없는 내부 샤워실 등에 보관되어 있던 투표함들과 약 247만 장의 투표지 보존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보안 과관리 부실에 대한 여야 위원들의 강한 질타와 의혹 제기가 이어졌다.최근 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메우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일련번호가 없는 임시 예비용지인 ‘무번호 투표용지’를 무분별하게 배부했으나, 정작 실제 배부되고 사용된 정확한 총량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원래 정식 투표용지는 고유의 일련번호를 통해 교부 매수와 잔여 매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번에 배부된 무번호 용지는 번호가 아예 없거나 현장에서 급하게 손으로 적는 등 관리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사후 추적과 교차 검증이 불가능한 상태다.현장에서는 투표지 교부 시 유권자가 확인하는 일련번호 절취선 부분을 떼어내고 주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자신이 받은 용지가 정규 용지인지 법적 흠결이 있는 무번호 용지인지 인지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번호 없이 기표된 투표지도 정규 투표지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조특위의 현장 검증을 통해 선거 관리의 핵심인 `투표 무결성`이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확한 유·무효 표 검증과 총량 확인이 불가능해진 만큼, 향후 낙선자들을 중심으로 한 선거 무효 소송 등 거대한 법적 공방과 공정성 시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성역화된 선관위·판사·헌법재판소는 한통속?선관위는 투표용지 관리 부실과 사법부의 일방적 판결 때문에 법적 감시망을 벗어난 `성역`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아 왔다. 개표 과정과 선거 관리에서 나타난 비상식적인 행태들을 부정선거의 증거로 꼽는다. 인쇄 오류로 두 후보의 기표란이 겹친 `배춧잎 투표지`, 접힌 흔적이 전혀 없이 빳빳한 `신권 다발 투표지`, 접어도 원상태로 펴지는 `형상기억용지`(종이가 모양을 기억해 스스로 펴지는 현상)가 대표적이다. 사전투표 때 투표지를 소쿠리나 빵 포장지, 택배 상자에 담아 배달하듯 부실하게 옮긴 사건은 선관위가 얼마나 무사안일하고 허술하게 행정을 처리하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10회 지방선거 개표 과정에서 후보자 간 득표수를 뒤바꿔 입력하는 등 심각한 행정 오류를 범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 제3투표소에서는 임태희 후보와 안민석 후보의 득표수가 서로 바뀌어 입력됐고,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1동 투표소에서는 개표 결과를 중복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권자 1,104명의 표가 전산에서 통째로 누락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지난 3일 국회 투표용지 부족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중앙선관위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기 시흥시의회와 김천시의회, 경기도의회 비례대표 선거 과정에서 개표 결과 입력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흥과 김천 선거에서는 재검표 과정에서 무효표와 유효표가 서로 뒤바뀌어 입력되는 사례가 있었고, 경기 수원시와 안산시 단원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정당별 득표수 집계 과정에서 오류가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선관위는 "단순 입력 실수이며 최종 당락에는 영향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정확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선거관리기관이 기본적인 행정 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여기에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선관위의 방만한 계약 운영과 수의계약 특혜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수의계약은 원칙적으로 2천만 원 이하로 제한되지만, 선관위는 최근 5년간 전체 계약의 82.1%에 해당하는 2,187건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수의계약 업체 가운데 일부에는 전직 선관위 직원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선관위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성역화된 배경에는 사법부와 수사기관의 방조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직선거법상 부정선거의 주범은 최고 사형에 처할 만큼 중죄인데도, 현직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겸임하는 구조 탓에 법원이 선관위에 온정적인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이다. 경찰과 검찰이 실컷 조사해서 기소해 봤자, 선관위와 `한통속`인 판사들이 무혐의나 무죄 판결로 봐주기 때문에 수사기관마저 무력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법부의 봐주기식 행태가 선관위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면서 사법 감시의 사각지대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60여 년간 고인 물로 썩을 대로 썩어 `선거가족위원회`가 됐다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현직 대법관과 각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맡는 선거관리위원장 제도부터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사와 선관위는 한통속인 만큼 부정선거 관련 압수수색과 재판 등에서 100% 선관위의 입장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문형배 재판관은 과거 부산시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고, 정형식 재판관도 대전시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이들 두 재판관은 2024년 12·3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관위에 군 병력을 급파해 서버실을 점거하도록 한 윤 대통령에 대해 헌재가 8:0 만장일치로 탄핵 결정을 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를 해체할 것인가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투명한 투표함 사용, 현장에서 공개 수개표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와 대만이다. 두 나라는 디지털 시대에도 100% 현장 수개표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투표가 끝나면 투표함을 다른 장소로 옮기지 않고 즉시 현장에서 개표를 시작한다. 광학 판독기나 전자 분류기 대신 사람의 눈과 손으로 표를 확인하고, 여러 명이 동시에 기록하며 서로 교차 검증한다.프랑스는 4명이 각각 투표지 확인과 기록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더블체크를 하며, 대만은 투표지를 한 장씩 시민과 참관인에게 공개한 뒤 후보 이름을 큰 소리로 읽으며 수기로 집계한다. 일반 시민의 참관은 물론 스마트폰 촬영과 실시간 방송도 폭넓게 허용하여 누구나 개표 과정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프랑스는 과거 일부 전자 개표를 도입했다가 해킹 위험을 이유로 폐지했고, 대만 역시 전산 의존을 최소화하며 선거의 투명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사람이 직접 개표하지만 결과는 당일 밤 대부분 확정된다. 속도보다 신뢰를 우선한 결과다.특히 독일, 헝가리, 우크라이나는 투명한 투표함 사용과 투표소 현장 공개 수개표를 함께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이들 국가는 투표 시작 전 유권자와 정당 참관인이 빈 투표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 아크릴 투표함을 사용하며, 투표 종료 후에는 투표함을 별도의 중앙 개표장으로 대규모 이송하지 않고 해당 투표소에서 즉시 공개 수개표를 실시한다.개표 과정은 선거관리위원과 정당 참관인,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며, 개표가 끝난 뒤 결과를 공식 집계기관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처럼 투표부터 개표까지 전 과정을 현장에서 공개하는 제도는 투표함 이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줄이고 선거의 투명성과 국민 신뢰를 높이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이러한 요구를 반영하듯 대학생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은 지난 6월 5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며 24시간 항의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라는 구호에는 사전투표제를 폐지하고 선거를 본투표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사전투표가 선거 불신과 각종 의혹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선관위라는 조직의 존폐가 아니다. 투표용지 일련번호를 철저히 관리하고, 법이 정한 절차대로 투표용지를 작성·봉인·인계하며, 투표함 이동과 개표 과정을 국민 누구나 직접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민주주의의 생명은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다. 선관위 해체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누가 선거를 관리하느냐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이며, 국민 누구나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있는 투명한 투표·개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