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흔히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 ‘적마(赤馬)의 해’로 불린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도 있다. 육십갑자(六十甲子)는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를 조합해 60년을 한 주기로 순환시키는 동아시아의 전통 연호 체계다. 2026년 ‘丙午(병오)’를 육십갑자로 풀어보자. 먼저 천간인 병(丙)은 열 개의 천간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며, 오행으로는 불, 즉 화(火)에 속한다. 병은 음양 구분상 양(陽)에 해당해 위로 솟구치고 밖으로 확산하는 성질을 지닌다. 정체보다는 발산을, 응축보다는 확장을 상징하며, 태양의 열기와 한여름의 기운, 왕성한 생명력과 연결돼 이해돼 왔다. 이러한 성질로 인해 병에는 색채 상징으로 적색, 즉 붉은색이 해당된다.지지인 오(午)는 열두 지지 가운데 일곱 번째에 해당한다. 오의 상징 동물은 말이다. 말은 예로부터 빠른 이동성과 강한 추진력, 역동성을 대표하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오 역시 오행으로는 불(火)에 속하며, 음양적으로는 양(陽)의 기운을 지닌다. 하루의 시간으로 보면 오시(午時)는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는 정오를 전후로 하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다. 불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이다. 그 때문에 오(午)는 내향성보다는 외향성, 축적보다는 분출, 정체보다는 활동의 상징으로 해석돼 왔다.병오년은 천간과 지지 모두가 화(火)에 속하고, 음양 또한 모두 양(陽)으로 겹치는 구조를 이룬다. 육십갑자 체계에서 보면 병오년은 불의 기운과 양의 에너지가 가장 강하게 중첩된 해로, 활력과 속도, 변화와 확산의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여기서 ‘붉다’는 표현은 병(丙)의 오행적 색채에서 비롯된 것이다.‘붉은 말의 해’라는 표현 자체가 우리 전통 민속에서 일관되게 사용돼 온 개념은 아니다.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띠 동물에 색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는 풍습은 우리 문화에는 없었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상업적으로 확산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을 ‘황금돼지의 해’로 명명하며 출산과 결혼을 연결한 마케팅 역시 같은 흐름에서 등장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병오년의 화(火) 기운과 적색 상징은 육십갑자 이론에 따른 해석일 뿐, ‘붉은 말의 해’라는 명칭은 비교적 최근에 대중화된 표현에 가깝다.말 자체가 지닌 상징성은 매우 풍부하고 길하다. 민속적으로 말은 하늘의 사신이자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로 인식돼 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안장만 얹힌 말은 무덤 주인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를 상징하며, 장례 의례에 사용되는 꼭두 인형 역시 말을 탄 형상이 많다. 말은 제왕의 출현을 알리는 영물로 여겨졌고, 영웅과 선구자, 장수의 상징으로도 등장했다. 속도와 생명력, 정력과 박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인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천마(天馬), 백마(白馬), 용마(龍馬), 쌍마(雙馬) 등은 모두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특히 백마는 광명과 태양, 남성적 원리를 상징해 신성하고 위대한 존재로 인식됐으며, 신랑이 백마를 타고 혼례를 치르던 풍습으로도 이어졌다. 이처럼 말이라는 존재 자체는 우리 문화에서 부정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그런데도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계보를 살펴보면 말띠 왕비는 최소 다섯 명에 달한다. 만약 말띠 여성이 실제로 ‘팔자가 세다’는 인식이 당대 사회에 강하게 존재했다면 왕실 혼인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천진기 전 관장은 이 속설에 대해 “중국이나 한국의 전통 문헌 어디에서도 말띠 여자가 사납다거나 팔자가 세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며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강한 말의 이미지를 남성성으로만 해석한 데서 비롯된 후대적 왜곡”이라고 설명한다. 조선 후기 유교적 질서 속에서 여성의 사회 활동과 주체성이 억제되면서 활동성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말의 기운이 여성에게는 ‘과하다’는 인식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일본 사회의 병오년(丙午年) 혐오 정서가 유입된 영향도 거론된다. 일본에서는 병오년에 태어난 여성이 화를 불러온다는 전설이 퍼지며 실제로 출생률이 급감한 사례도 기록돼 있다.띠가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결정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민속학적으로는 자기충족적 예언, 즉 반복적으로 주입된 이미지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너는 말띠라서 활달하다” “말띠는 세다”는 말을 듣고 자란 개인이 그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자기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는 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특정 상징을 어떻게 해석하고 누구에게 적용해 왔는가의 문제에 가깝다.병오년(丙午年)은 이론적으로 화(火)와 양(陽)의 기운이 중첩된 해다. 이는 분명 역동성과 변화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은유일 뿐, 개인의 운명이나 성별의 가치 판단으로 이어질 근거는 아니다. ▶신화 속 말 `페가수스`와 실제 천마(天馬)신화 속 말의 대표적 존재로는 단연 페가수스(Pegasus)를 꼽을 수 있다. 페가수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천마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로 묘사된다. 고전 문헌에 따르면 페가수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반인반신의 영웅인 페르세우스가 괴물 메두사의 목을 베는 순간, 메두사의 피에서 태어난 말로 전해진다. 이후 페가수스는 영웅 벨레로폰의 말이 되어 여러 모험을 함께하지만, 인간이 신의 영역에 오르려 하자 그를 떨어뜨리고 홀로 하늘로 올라가 결국 북쪽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천마(天馬)에 대한 상상과 숭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나타난다. 동양에서는 하늘을 달리는 신성한 말을 천마라 불렀으며, 도교적 상상 속에서는 옥황상제가 타는 말로 그려지기도 했다. 우리 고대 설화에서도 천마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건국 설화에 따르면,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날 당시 알이 담긴 금궤 곁에는 신령한 존재가 함께했으며, 이는 후대에 천마로 해석돼 왕권과 신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이러한 천마의 이미지는 단순한 설화에 그치지 않고 실제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1973년 경주 천마총(155호 고분)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는 5세기 말 신라의 마구 장식품으로, 현재 국보 제207호로 지정돼 있다. 말안장 좌우에 달았던 이 장니에는 구름 속을 달리는 흰 천마가 생동감 있게 표현돼 있어, 당시 신라인들이 말에 부여했던 상징성과 정신 세계를 잘 보여준다.고대 한반도에서 말은 신성함과 더불어 실질적인 삶의 기반이기도 했다. 신라의 토기 유물인 ‘기마인물도상’(국보 제91호)은 말을 탄 인물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말이 일상과 의례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고구려의 쌍영총과 무용총 고분벽화에 남아 있는 수렵도에는 말을 타고 사냥에 나선 장면들이 묘사돼 있어, 고구려 사회가 기마 전술과 말 활용에 능숙했음을 짐작하게 한다.고려와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말은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됐다. 조정에는 말과 가마, 목장을 관할하는 사복시(司僕寺)가 설치됐고, 이곳에는 말의 질병과 치료를 담당하는 마의(馬醫)들이 배치됐다. 이는 말이 군사·교통·의례 전반에서 국가 운영의 핵심 자원이었음을 보여 주는 제도적 장치였다.또한 중앙의 명령을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는 역참이 설치됐고, 이곳에는 파발마라 불린 역마가 운영됐다. 특히 암행어사가 지방을 순시할 때는 마패에 새겨진 말의 수에 따라 일정 수의 역마를 징발할 수 있었는데, 이는 말이 행정과 권력 집행의 실질적 수단으로 활용됐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이처럼 말은 신화 속 천마에서부터 국가 운영의 실무적 기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상상과 현실을 동시에 떠받쳐 온 존재였다. 하늘을 나는 상상의 말과 땅을 달린 실제 말은 시대와 영역은 달랐지만, 인간이 말에 부여한 의미만큼은 언제나 각별했다.▶우리나라와 외국에 있어서 준마(駿馬)는? 말은 우리 문화에서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자 세계를 가로지르는 이동과 도약의 상징이었다. 말은 인류 역사에서 단순한 가축을 넘어 국가의 흥망과 문명의 확장, 권력과 이동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빠르게 잘 달리는 뛰어난 말인 ‘준마(駿馬)’는 역사 기록과 사료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조선 태조 이성계가 탔던 여덟 필의 명마는 ‘팔준마(八駿馬)’로 불리며, 이는 『조선왕조실록』과 관련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세종은 이들 말을 단순한 군마가 아닌 왕조 창업의 상징으로 인식해 화가 안견에게 ‘팔준도(八駿圖)’를 그리게 하고, 집현전 학사들에게 찬문을 짓게 했다. 이는 준마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가 서사의 일부로 편입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중국 고대 사서에서도 준마는 인간 영웅과 병치되어 기록된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등장하는 적토마(赤兔馬)는 여포와 관우의 말로 전해지고 있다. “사람 중에는 여포가 있고 말 중에는 적토마가 있다”는 표현은 이미 준마가 초월적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보여 준다.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묘사와 함께 전장의 속도와 충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기록됐다. 서양 고대사에서도 준마는 전쟁과 정복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말로 알려진 부케팔로스(Bucephalus)는 플루타르코스와 아리아노스의 저술에 등장한다. 알렉산더가 어린 시절 길들였다는 일화는 고대 전기문학의 단골 소재다.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에 동행했고, 전사 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준마가 단순한 탈것을 넘어 정치적·군사적 상징이었음을 보여 준다.근대 유럽에서도 준마는 권력의 이미지와 결합된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말 ‘마렝고(Marengo)’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워털루 전투 등 주요 전장에서 실제로 사용된 말로 기록돼 있다. 마렝고는 여러 차례 부상을 입고도 생존했으며, 사망 후에는 골격이 영국 국립군사박물관에 보존됐다. 이는 준마가 역사적 실체로서 기록되고 보존된 드문 사례다.영국의 웰링턴 공작이 워털루 전투에서 탔던 ‘코펜하겐(Copenhagen)’ 역시 군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코펜하겐은 장시간 전투 중에서도 기수를 지탱한 말로 전해지며, 은퇴 후에도 군 의식과 퍼레이드에 등장했다. 이는 근대 전쟁에서 말이 수행한 역할과 상징성을 동시에 보여 준다.산업화 이후 준마의 의미는 전쟁에서 스포츠와 혈통으로 이동한다. 18세기 영국의 써러브레드 ‘이클립스(Eclipse)’는 공식 경주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말로 기록되며, 오늘날 전 세계 경주마 혈통의 상당수가 이클립스를 조상으로 둔다. 19세기 헝가리의 명마 ‘킨쳄(Kincsem)’은 54전 전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스포츠 역사 속 준마의 상징이 됐다. 이 시기부터 준마는 국가의 군사 자산이자 동시에 산업적·경제적 자원으로 전환된다.▶경주마 거래 최고가 900억원현대에 있어서 준마의 상징성은 경마 산업에서 정점을 이룬다. 현재 전 세계 스포츠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몸값을 기록한 경기용 말은 미국산 서러브레드인 `후사이치 페가수스(Fusaichi Pegasus)`다. 이 말은 은퇴 후 아일랜드의 세계적 종마 목장인 쿨모어 스터드(Coolmore Stud)에 약 7,000만 달러(당시 약 791억~882억 원)에 매각되며 역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후사이치 페가수스는 2023년 5월 26세의 나이로 노령화와 건강 악화로 인해 안락사를 맞이했다. 2025년 상금왕의 주인공은 일본의 서러브레드 `포에버 영`(Forever Young)이다. 경주마로 데뷔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통산 누적 상금이 약 1,935만 달러(약 256억 원)에 달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포에버 영이 거둔 가장 큰 단일 우승 상금은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컵 우승 상금 약 1,000만 달러다.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준마는 늘 인간의 역사적 전환점에 등장했다. 전쟁과 건국, 정복과 패배, 그리고 근대 스포츠와 산업의 영역까지, 말은 인간 문명의 속도를 물리적으로 끌어올린 존재였다. 병오년 말의 해는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말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욕망, 국가의 서사를 실어 나른 ‘역사적 동반자’였음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붉은 말의 해’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징을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고 계승하느냐다. 새해의 말은 누군가를 억압하는 굴레가 아니라 다시 힘차게 달릴 힘을 선사하는 존재여야 한다. 준마가 어디로 달릴지는 병오년을 살아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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