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왜 하늘의 빛나는 점들에는 프랑스 지도의 검은 점처럼 닿을 수 없을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 -빈센트가 테오에게(1888년)"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다." "나는 삶과 그림에서 신이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지만, 고통받는 동안 나보다 위대한 어떤 것, 나의 삶, 창조할 수 있는 힘 없이는 지낼 수 없다." "만약 당신의 내면에서 `당신은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와도 그냥 계속 그려라. 그러면 그 목소리는 잠잠해질 것이다."1890년 7월 29일 빈센트 반 고흐는 결국 세상을 떠난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를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유언 같은 고흐의 이 메시지는 고흐가 그린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 지금도 빛나고 있으리라.`불멸의 고뇌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언이다. (재)칠곡문화관광재단(이사장 김재욱 칠곡군수)은 지난 9월 19일부터 오는 10월 22일까지 칠곡군 석적읍 칠곡공예테마공원 예태미술관에서 <반 고흐, 향기를 만나다>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이번 특별전은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을 시각과 후각으로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다감각 예술전시다. 고흐의 대표작을 프리미엄 레플리카와 3D 연출로 선보이며, 작품별로 어울리는 향기를 더해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인다.고흐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지만, 그의 마지막 유언처럼 "고통은 영원하다"고 체념한 것만은 아니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는 정신 발작의 공포에 떨면서도 예술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치열하게 노력했다.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면서도, "우리 영혼에 큰 불이 타오르고 있어도, 아무도 와서 몸을 녹이지 않는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한 줄기 연기만을 볼 뿐이다"라며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끝까지 불태우려 했다. 그의 말 속에는 고통에 대한 절규뿐 아니라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한 예술가의 비극적이면서도 치열한 투쟁이 담겨 있다.
▶고흐의 유언 "고통은 영원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890년 프랑스에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가장 유력한 설은 스스로 총을 쏴 자살했다는 것이다. 고흐는 오랜 정신 질환과 생전 무명 화가로서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절망감에 시달렸고, 죽기 전 동생에게 "고통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그의 고통스러운 삶과 마지막 유언에 근거한다. 2011년 고흐의 죽음이 타살이나 총기 사고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평전이 나오기도 했으나, 여전히 많은 학자는 자살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고흐는 1888년 자신의 귀를 자른 후, 가브리엘 베를라티에라는 이름의 하녀에게 그 귀를 건넸다고 알려져 있다. 이전에는 그녀가 매춘부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2016년 연구를 통해 사창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은 고갱과의 갈등,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 정신 질환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고흐는 고갱과의 예술관 및 성격 차이로 잦은 다툼을 벌였으며, 고갱이 아를을 떠나겠다고 하자 극심한 좌절감에 면도칼로 귀를 자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 전문가들은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이 고흐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생전에 200만원대 고흐 작품이 사후에 1600억원으로
고흐는 젊은 시절에 평소 존경하던 화가를 만나기 위해 며칠을 걸어갔는데, 막상 그 집 앞에 당도하자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아직 그를 만날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신발 한 켤레》를 보면 고흐가 얼마나 먼 길을 걸었던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평생동안 그린 900점 이상의 유화와 1,100점 이상의 드로잉과 스케치 가운데 그가 생전에 유일하게 판매한 유화는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다. 이 작품은 그가 사망하기 4개월 전인 1890년 3월 벨기에 브뤼셀의 `레 뱅` 전시회에서 벨기에 화가 안나 보슈에게 400프랑(현재 화폐가치로 적용하면 약 270만원)에 팔렸다. 당시 미술계는 고흐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 터치를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것으로 보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고흐의 명성은 그의 사후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 테오가 사망한 후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허는 고흐 형제의 편지와 작품을 정리하고 적극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하며 고흐의 예술 철학과 삶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1901년 파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면서 그의 작품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20세기 초부터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흐 작품 중 경매에서 가장 최근에 최고가로 팔린 작품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과수원》이다. 2022년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1,720만 달러(당시 약 1,600억원)에 낙찰되며 기존 고흐 작품의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 작품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고(故) 폴 앨런의 소장품으로, 그가 소유했던 컬렉션 경매에 출품됐다.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머물던 1888년에 그린 작품으로, 봄 풍경 연작 중 하나다. ▶존재의 고뇌와 희망을 담은 철학. 고유한 스타일을 향한 집념《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밤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연작) 등에 관통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공통적인 특색은 바로 `감정`의 시각화다. 그의 작품 속 강렬한 색채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붓 터치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화가 내면의 고뇌와 희망, 혼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의 예술성은 바로 이처럼 깊은 감정적 울림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비롯된다.고흐의 작품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녹아 있다. 그는 스스로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고 언급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세 갈래 길은 갈 곳을 잃은 고흐의 막막한 심정을 대변하며,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졌을 당시에는 절망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빛나는 별은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갈망했던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흐의 작품은 이처럼 고뇌와 희망, 절망과 구원을 오가며 치열했던 그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고흐는 동시대 유행하던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바라기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으며 "제닌이 모란을, 코스트가 접시꽃을 가졌다면, 나는 해바라기를 가졌다"고 말한 일화는 이러한 고흐의 예술적 집념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고흐의 작품들은 그가 겪었던 시대적 혼란과 내면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낸 걸작들이다.
《별이 빛나는 밤》(1889)
이 작품은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 이후 프랑스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려졌다.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강렬하게 빛나는 별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고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반영한다.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밤 풍경을 그린 것으로, 고흐는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고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영적인 평화와 희망을 갈망했던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이 작품은 고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밭을 가로지르는 세 갈래 길은 고흐가 나아갈 방향을 잃고 헤매던 막다른 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어두운 하늘과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는 고흐의 불안과 절망감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광활한 밀밭은 그의 지독한 외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밤의 카페 테라스》(1888)고흐는 이 작품에서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 밤의 풍경을 그려냈다. 인공조명인 가스등의 밝은 노란색과 밤하늘의 푸른색, 보라색, 초록색을 대비시키며 색채 실험을 시도했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작업하며 행복했던 시절을 보낼 때 그려졌으며,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카페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는 그가 희망을 품고 있었던 시기의 감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해바라기》 연작(1888-1889)고흐는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를 좋아했으며, 그에게 노란색은 희망과 기쁨을 의미했다. 이 연작을 통해 노란색만으로도 풍부한 색채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고흐는 아를의 작업실 `노란 집`에서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해바라기 그림들로 벽을 장식했는데, 이는 친구에 대한 깊은 감사와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준다. 만개한 해바라기의 역동적인 붓 터치는 고흐의 내면에 숨겨진 뜨거운 열정을 그대로 보여준다.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