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이 순간에도 끊임이 없다. 또 계절이 변한다. 얼마 전까지 우릴 지치게 했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젠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매해 여름마다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난해도 이렇게 더웠었나 싶을 정도로 올 여름 더위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더운 여름일지라도 67년 전 그 해 여름같이 치열하고 힘든 여름이 있었을까?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은 1950년 6월 25일 휴일 새벽의 고요함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해방 후 줄곧 전쟁만을 준비 해 온 북한에게 대한민국은 역부족이었다. 단 3일 만에 서울을 내어주고 8월엔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났다.
8월 15일!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였을까? 김일성은 전선까지 내려와 광복절까지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는 독촉을 해댔다. 북한군은 가용 전력의 대부분을 쏟아 부으며 대구, 경주, 포항, 창녕, 마산 등 4개의 공격축선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포위하고 동시에 공격해 왔다.
자유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어느 지역 하나만이라도 뚫리면 방어선 자체가 무너지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국군과 유엔군의 용맹과 피땀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냈다. 방어선의 모든 곳에서 북한군의 전진을 막아내고 전력을 소진시키는데 성공 했고, 6·25전쟁사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냈다. 다부동 전선을 돌파하지 못한 북한군은 공격의 방향을 칠곡에서 영천으로 틀게 된다.
9월 5일부터 13일까지 영천에서 벌어진 전투는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된 혈투였고 당시 미 합참에서는 영천이 돌파되면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를 포함해 62만명을 미국령 사모아도에 배치해 신한국을 창설하겠다는 계획까지 승인 한 상태였다. 또 한 번의 거대한 위기에서 직면한 국군은 필사의 각오로 북한군을 패퇴시키는데 성공했고 수세에서 공세로 전세를 뒤집으며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한 기반을 만들어 냈다.
67년이 지난 지금도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말들은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과의 대치 국면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일까? 우리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은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지난 9월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에서 `칠곡! 너는 나의 평화다`라는 슬로건을 보면서 다부동전투에서 국군이 보여준 승리에 대한 의지와 용맹을 떠올렸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을 알려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힘을 키워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 김관용 도지사님과 칠곡, 영천 등이 머리를 맞대어 진행한 것이 호국평화벨트 구축사업이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칠곡호국평화기념관과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아 흐려진 안보의식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칠곡과 영천 그리고 경상북도는 국난의 위기 때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난 호국의 중심지이다.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서 가장 높이 난다’고 했다.
국가 안보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요즘 평화에 대한 칠곡과 영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칠곡 그리고 영천이 대한민국의 평화와 나아가 세계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더욱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