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 가까운 설치류 동물인 레밍(lemming·나그네쥐)은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집단 자살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집단 자살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거의 떼죽음 수준인데, 미처 얼음이 녹지도 않은 차디찬 강물을 향해 자발적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과거 동물학자들은 이같은 집단행동에 대해 먹을 것이 부족해 함께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주로 북유럽에 서식하는 이 작은 동물들은 먹이와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두가 살겠다고 발버둥치면 함께 몰락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가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미담도 있다.
오늘날 언론 등에서도 흔히 레밍을 비유할 때 이 설명에 따르고 있어 너무나 잘못 알고 있어 바로잡는다.
무리를 위해 자살을 감행한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가 노르웨이에 사는 레밍이다. 레밍은 3, 4년마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봄이나 가을 밤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바닷가에서 막다른 벼랑에 다다르면 바다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늙은 쥐들이 스스로 집단자살을 감행함으로써 나머지 젊은 무리가 배곯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준다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생물학과 데니스 치티 교수가 1996년 발간한 저서 `레밍은 자살하는가? 아름다운 가설과 추한 사실`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먹이를 찾아 우왕좌왕하던 레밍 집단이 벼랑에 다다랐을 때 그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떼죽음을 당한다는 것이다.
어느 동물이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욕구가 강한 것이 본능인데 이를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을 위하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치티 교수의 저서 이후로 적어도 학계에서는 더 이상 레밍에 대한 구구한 논의가 사라졌다고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2007년 8월 발간한 `알이 닭을 낳는다` 생태에세이집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치티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레밍은 그저 미끄러운 얼음판을 달리다 미처 멈추지 못해 익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살성향은 원래 진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인간만이 자살하는 유일한 동물이지요."
정지비행과 고속의 다이빙으로 최고의 사냥기술을 가진 `물수리`가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숭어를 낚아채어 비상하는 장면은 시인에게는 생동하는 새의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보이겠지만 동물학자(과학자)는 `레밍`처럼 단지 먹잇감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생태계의 먹이사슬로 단순화할 것이다.
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