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금 회사일로 급하게 돈을 부쳐야 하는데 휴대전화와 지갑을 다 잃어버렸어요! 일단 600만원을 박○○ 계좌(농협 XXX-XX-XXXXXXXX)로 부쳐 주시면, 나중에 제가 어머니께 다시 보내드릴게요.”
안동시에 사는 임모(여·55)씨는 지난 4월 집전화로 걸려온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주저 없이 바로 600만원을 입금해 주었다. 그런데 몇일 뒤 다시 아들이 연락을 하여 300만원을 더 송금 하여 달라고 하여 친아들로 믿고 요구하는 금액을 송금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임씨의 아들은 그런 전화를 한 적도 없었고, 임씨는 900만원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안동경찰서는 이같은 수법으로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모두 24명의 피해자로부터 1억2천여만원을 가로챈 이모(37)를 휴대전화․은행 계좌 등 6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지난 25일 인천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검거했다.
그런데 검거된 이씨의 범행수법은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일반적인 보이스피싱과는 좀 달랐다. 대포통장은 현행법상 불법이어서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지급정지 제도’가 있어 지속적으로 범행에 이용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된 이씨는 대포통장 대신 주거지인 인천-경기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 통장을 악이용하기로 머리를 굴렸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서 집을 알아보는 세입자로 가장해 전세 계약금을 보내주겠다며 부동산 중개업소의 계좌번호를 알아낸 후 이를 대포통장 대신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불러주어 거액을 입금하게 하고, 부동산 중개업소측에는 실수로 계약금을 너무 많이 입금했다며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달라는 수법을 썼다.
이씨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자신들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악용된 줄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들이 입금한 현금을 이씨에게 빼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박모씨는 “전세를 계약하러 온 세입자인 줄로만 알고 계약금을 입금할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는데,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사용되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안동경찰서 관계자는 “최근 대포통장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자 합법적인 계좌를 범행에 이용하기 위해 계좌 주인을 속이는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며 "낯선 사람과 상거래시 계약금(결재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입금했으니 돌려달라는 사람이 있을 경우 보이스피싱에 악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의심이 가면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휴대전화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드러난 24명의 피해자 외에도 서울, 경기, 경남, 경북 등 1,800여명에게 일반전화로 통화한 내역이 추가로 확인하고 이씨를 구속하고 피해자가 더 있는지 여죄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