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왓 밭을 갈고 씨 뿌리고 다질 때에, 마흔여덟 뿔방망이 돌아가며 땅을 치네. 농부는 네가 아니면 누굴 불러 이 일 하리. 바위 같은 흙덩이도 네 앞에선 가루되어, 뿌린 씨앗이 골고루 덮이나니. 너 혼자 하는 이 일을 사람이 어찌 하리. 갈옷에 삿갓 쓰고, 씻부개기 둘러매고, 씨 뿌리며 자라온 어린 시절 생각하면 갈 가다 밭만 보아도 어머니가 그립구나” 위 글은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이 쓴 `남태`입니다. 남태는 씨앗을 뿌린 뒤에 밭을 다지는 나무로 만든 연장인데 제주도에서만 쓰였다고 하지요. 제주도는 화산재로 이루어진 밭이 많은데 땅이 메마르고 흙이 가벼우며 자갈이 많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심하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나서 땅을 다져주지 않으면 씨앗이 흙에 달라붙지 못하고 바람에 흙과 씨앗이 말라 싹이 제대로 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씨를 뿌린 뒤에는 꼭 남태를 끌어서 밭을 다져야만 했습니다. 조선 세종 때의 문신인 정초(鄭招)·변효문(卞孝文) 등이 쓴 `농사직설(農事直說)`에는 “3∼4월 풀이 많이 자랐을 때, 윤목(輪木)으로 풀을 죽이고 바닥을 고른 다음 늦벼를 뿌린다”라고 하였는데 이 윤목이 남태일 것으로 봅니다. 지름 30㎝, 길이 80㎝쯤 되는 통나무 주위에 길이 13㎝, 지름 5㎝쯤의 토막나무발 30여개를 촘촘하게 박아놓은 것으로 말이나 소가 끌거나 사람이 어깨에 메어 끌고 다니기도 했지요. 남태 비슷한 것으로 돌로 된 돌태도 있습니다. 만일 소가 남태를 끌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어깨에 메어서 끌었다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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