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재(東山齋)는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耳岩, 귀바우) 동쪽 위치하고 있는 광주이씨 3대(이도장-이원정-이담영)의 재사(齋舍)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이곳에는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 1603-1644)의 낙촌정(洛村亭)과 장자(長子)인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 1622∼1680)의 경암재(景巖齋)와 장손(長孫)인 정재(淨齋)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의 소암재(紹巖齋)와 구 별채가 한 울 안에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낙촌정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에는 경암재가 우측에는 소암재가 위치하고 있는 그리 흔치 않는 품자형(品字形)의 재사(齋舍)이다. 이 동산재(東山齋) 담 밖에는 영의정 번암 채제공이 찬(撰)한 귀암 이원정의 신도비(神道碑)가 서있고 대문 무실문(懋實門) 앞에는 아담스레 만들어진 연(蓮)못이 있다. 洛村亭은 1913년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 1603∼1644)의 휘행(徽行)과 의덕(懿德)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사(齋舍)이다. 종친간(宗親間) 친목(親睦)을 돈독(敦篤)히 하고 후진계도(後進啓導)에 정려(精勵)하게 할 목적으로 입춘회(立春會)를 창설하여 매년 1회씩 모임을 가져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하였으며, 별세하신 후에는 자손들이 그 유지를 받들어 계승(繼承)해 왔으며, 낙촌정이 세워진 후에는 이 재사를 종친 간 친목과 강학의 장소로 활용함과 아울러 향도유림제현(鄕道儒林諸賢)을 초빙하여 경서를 강(講)하기도 하고, 또는 시문(時文)을 낭송하며 상호 인격 도야(陶冶)와 미풍양속의 유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5월 21일 저녁 7시부터 2시간동안 낙촌정 경내에서 입춘회 주관으로 지역민들의 정서적 휴식 공간으로 음악제 (音樂祭)를 성황리에 배풀었다. 입춘회여 영원하라 ! 둔촌공 현손이신 승사랑공깨서 칠곡으로 입향하시어 넓게 터를 마련하시고 공의 현손이신 석담공의 차남으로 4백여 년 전 따스한 봄, 천지의 기운을 얻어 웃갓에서 태어나신 낙촌공께서는 배움에 천부적 기억력으로 첫 돌되어 문자를 깨우치고 철들며 기개 가 출중하고 도량 또한 밝고 넓음이라 어릴 적부터 필한여류(筆翰如流) 뛰어난 솜씨 그 누가 따를까 ! 위로는 효성이 끝없이 솟고 아래로는 우애가 하해와 같이 흐를지니 인조 원년 공께서는 21세 때 양가 모부인 친상을 당해선 습기찬 거적자리 새우잠 상례 치러 몸은 헐고 뼈만 남아도 행복해 하더이다. 남인이 수난의 긴 터널을 벗어나 28세 늦은 나이에 대과 급제하시어 구습 폐단 혁신하고 백성의 이름으로 공덕비(公德碑) 얻었어라 ! 병자호란 오랑캐로 임금님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시고 허약하여 요양중일 때 임금께서 친히 약과 어의(御醫)를 보내 간병케 하셨어라 ! 37세 노모 봉양 지극한 효성으로 높은 자리 버리시고 합천 현감 재임시는 온갖 선정 베푸시어 그 곳 관찰사가 칭찬키를 “ 빈민을 끊고 백성을 구하는데 명수 ” 라 하더이다. 청념결백, 공명정대로 국리민복을 위해 진력하시어 입금 애총 받으시니 나라의 보배로다. 대숲 푸른 골에 청백리 일어서면 청솔 위로 고고한 백학 하늘 위로 차 오른다. 아랫대 자자손손 우애와 존경으로 살기를 바라시어 입춘회(立春會)를 창시(創始)하여 내려온 지 어언 365년 ! 꿋꿋이 견디면서 다져지고 굳어진 땅 이제 번창의 길로 거침없이 달리리니 낙촌공(洛村公)께서는 당신 아래 다섯 형제 두시고 나라의 기둥 길렀어라 문익공 귀암 (文翼公 龜巖) 선조께선 돌밭에 둥지 트시고. 도헌공 박곡 (都憲公 朴谷) 선조께선 매원에 새 둥지를 선무랑공(宣務郞公) 선조깨선 봉화에다 찬봉공(參奉公) 선조께선 웃갓에서 막네 기은공(耆隱公) 선조께선 가실에다 각각 융성의 터를 잡았어라 오늘도 사방팔방 봄이 오는 길목에서 너도 나도 손에 손을 잡고 동산재실 낙촌정사(洛村亭舍)로 모여들어 광이(廣李)의 화목과 번영을 한 마음으로 노래 하리라 ! 그리하여 호탕웃음 장엄한 몸짓으로 보름달로 뜨는 가슴 저 하늘 울리게 하라 ! 영원히 울리게 하라 ! /詩 낙촌공 14손 시인 전교장 이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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