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이 정다운 사이는 형제간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란 천륜(天倫)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형제 또한 천륜이어서 더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하도 각박해져, 부모와 자식 사이도 위태로운 경우도 있고, 형제 사이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새삼스럽게 말을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의 속담에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속담의 내용에는 형제 사이야 전혀 문제없음을 전제하고 유행하던 말이었습니다. 사촌 사이만 해도, ‘한 다리가 천 리’여서 남이 잘되는 것에 배 아파하는 인간의 심리로, 혹 사촌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법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가정법의 말씨가 아니라, 사촌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야 으레 있을 수 있고, 심지어는 형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픈 시대로 바뀌고 있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약전(若銓) 형님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둘째 형님의 부음을 듣고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고 말했던 다산은, 여러 글에서 네 살 손위 형님인 정약전은 자신의 둘도 없는 지기여서, 자기들은 ‘형제지기’라는 말을 자주 거론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산은 인간이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효제(孝弟)’라는 두 글자에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편지를 아들들에게 보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형제 사이의 천륜에 돈독하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로도 사귀지 말라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友愛)하는 일이 인생의 본분임을 입이 닳도록 강조했습니다.
돈 때문에, 재산 때문에, 형제 사이에 불목하는 집안이 한두 집안이 아닙니다. 특히 재벌의 집안일수록, 재산이 많은 집안일수록 형제 사이에 우애가 돈독한 집안은 오히려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렇게 되어서야 어디 살맛 나는 세상인가요.
아버지 형제들이 형제지기임을 인식하고 살았던, 다산의 큰아들 정학연과 둘째 학유는 세 살 터울의 형제로, 세상에서 이름난 형제지기였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정학유의 부음을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에서, 남남인 친구들의 마음이 이렇게 아프고 쓰릴 진데, ‘정지(情地)’가 유독 특별한 친형인 정학연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를 염려했던 내용으로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 소문난 형제지기였음을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01년 다산은 귀양살이를 떠났고 정학유는 185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학연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와 내 아우는 화란 이후 55년을 함께 살면서, 험난하고 어려운 삶을 겨우 극복했는데, 이제 그가 죽었으니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라는 대목을 보면 그들은 정말로 남들이 부러워했던 형제지기였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각박해졌습니다. 부모와 자식, 형과 아우가 화목하지 못한 세상, 어떻게 국가나 사회가 화목한 세상이기를 기대하겠습니까. 역시 다산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효제’로 다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