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국장일에 일어난 만세 사건은 기미년 3·1운동 이래 버금가는 조선의 영웅적 독립투쟁이었다. 왜정의 혹독한 탄압 아래서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주의 타도와 일제가 수탈해간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구호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은 세계 민족운동 사상 찬연히 빛나는 영웅적 투쟁으로 우리 민족의 면목을 전 세계에 알렸던 운동이다. 그 20년을 맞이하여 조국의 완전광복이 극도의 혼란에 처하여 3천만 민족의 흥망이 걸린 이때 미소공동위원회의의 시급한 속개로 조선통일정부 수립과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 할 것을 강조하여 민주주의 민족 전선에서는 10일 오전 10시부터 성대한 시민대회를 치룰 계획이다.
이는 1946년 6월 6일 자유신문에서 “항일투쟁회고, 6·10 만세 운동 성대히”를 다룬 기록입니다. 1926년 6월10일 고종황제의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장례식을 기하여 전국적으로 제2의 3·1운동이라 일컫는 6·10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순종황제는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고 황제에서 임금으로 격하시키는 등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분으로 순종황제의 승하는 끊임없이 끓어오르던 한민족의 분노를 폭발시켜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 갔던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6·10만세운동은 조선민중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본질을 더욱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6·10만세운동의 준비과정을 통해 진행된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일부(천도교 구파)의 결합 경험은 이후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를 건설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오늘은 87년 전 순종황제의 장례식을 계기로 일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끓어오르던 한민족의 분노를 폭발했던 날입니다.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6·10만세운동을 6·10만세사건으로 격하시켜 단순한 학생과 청년들의 사소한 사건으로 축소, 왜곡하였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는 일제의 무단침탈을 응징하던 그날의 함성이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