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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기적을 보여 주는 칠곡에 감동하다

2020년 04월 09일(목) 18:39 [스마트뉴스]

 

이서연 시인
1991년 박재삼 시인 통해 등단
<문학과의식>으로 평론 등단
(사)한국문인협회 감사
(사)국학연구원 이사
저서 <사랑, 그 언어의 무늬><산사에서 길을 묻다><내 안의 나와 마주 앉아>외 다수

우리나라만 흔들리는 건 아니겠지만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떤 공포감을 주는 것인지, 전쟁은 무참한 희생과 상처만 남길 뿐임을 실감하게 하고 있는 시절이다. 이런 암울하고 우울한 시절에 두 가지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하나는 '기적의 배(Ship of Miracles)'라는 책과 멜레세 티세마 에티오피아 6·25참전용사회장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편지를 보내왔다는 기사다.

'기적의 배'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1만 4000명의 피란민을 구한 메러디스 비토리호의 기적을 다룬 책이다.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공로가 인정되어 2004년 기네스북에도 오른 바 있다.

이 책의 저자 빌 길버트(Bill Gilbert). 그는 2차 세계대전, 정부 정치, 스포츠 등에 관한 베스트 셀러 작가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로 재직하였고, 4년간 미 공군에 근무하였는데, 그중 2년 반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이었다. 그는 60대의 미국인 중 한국전쟁 발발 6개월 후인 1950년 크리스마스에 10만 명의 미군이 항구도시 흥남에서 철수하여 북한을 탈출하는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수백만에 이른다면서 그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한국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 승무원들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담아 책을 펴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이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들에 비해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으며, 기자들과 뉴스 앵커들이 현충일(Memorial Day)이나 재향군인의 날(Veterans’Day) 기념식을 보도하면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찬사와 영상자료는 내보내지만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모두가 잊지 않아야 할 사건이며, 흥남에서 싸운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알렉산더 헤이그 나토사령관(닉슨대통령의 백악관 수석보좌관, 레이건 대통령의 국무장관을 역임)은 단지 쓰여질 가치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는 이야기라며 자신이 50년이 지난 지금 이 영웅적 이야기 서술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을 가슴 뿌듯하게 여긴다고 머리말에 밝혔다.

메러디스호는 전쟁화물인 각종 대포와 화약 등 무기와 군용차량 등 전쟁물자를 가득 싣고 있던 화물선이었으나 피란민들이 몰려오자 선장은 흥남부두에 그 화물을 버리면서까지 피란민을 태웠다. 물도 음식, 화장실도 없는 배에서 혹독한 동해의 겨울 추위를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며 3일만에 부산에 도착했는데 그 3일간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 배에 대해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통해 비로소 조금 알 정도로 사실 자체를 소설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칠곡’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칠곡군 문화관광과 서병선 문화예술담당으로부터 받았다.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류지영 부원장께서 제게 보내주라고 주셨다고 한다. 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뼈마디 어디에 숨어 있던 까끌한 모래가 심장 속으로 파고 들어간 듯 떨리고 아리는 심정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또한 왜관수도원이 이 이야기와 아주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고는 핏톨이 봄볕에 꽃눈 틔우는 것처럼 전신에 꽃자리를 만들 듯한 전율의 눈물이 흘렀다.

메러디스호의 선장은 휴전한 후 1954년 가톨릭 수도자가 되었고 이름을 마리너스 라루로 바꾸었다. 그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성베네딕도회 뉴튼수도원에서 종신서원한 뒤 평생 수도원 밖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 수도사 감소와 재정난으로 뉴튼수도원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고, 독일의 베네딕도회 지도부에 공동체 해체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왜관수도원에서 지원을 결정했는데 이 결정 이틀 뒤인 2001년 10월 14일에 마리너스 수사는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지금도 왜관수도원에서 뉴튼수도원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아, 이런 기적같은 이야기가 실제의 일임에 감동이 아닐 수 없다. 50년 전 모든 것을 버리고 피란민을 구한 선장의 결단으로 뉴튼수도원이 그 기적을 받은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참으로 기적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또 한 가지 감동이 된 글이 있다. 멜레세 티세마. 에티오피아 6·25참전용사회장이다. 이 분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이 소식을 백선기 군수님께 듣는 순간부터 울렁임이 있었다. 백선기 군수와 멜레세 회장과의 인연은 칠곡군이 6·25참전 용사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2015년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에 초청할 때부터였다.

에티오피아가 6·25전쟁 때 6천37명을 파병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수호에 이바지한 바가 있다. 칠곡은 이에 대한 보은 차원으로 에티오피아 티조지역을 ‘칠곡평화마을’로 정하고 초등학교 2곳 신축, 식수저장소 4기와 식수대 11기 건설, 새마을회관 건립 등 환경개선 및 주민소득지원사업을 펼쳐왔다고 한다.

따라서 멜레세 회장을 비롯해 에티오피아는 칠곡군의 지원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가슴으로 기억하게 되었기에 칠곡군과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전쟁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안녕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편지로 보내온 것이다.

이 두 가지 글을 읽고 가슴이 떨렸던 것은 부끄러움과 흐뭇함이 겹치는 감정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의 그 아픈 역사를 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잊지 않아야 할 역사가 무엇 때문에 잊혀져도 되는 역사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유엔군들이 알지도 모르는 이 땅에 건너와 오로지 우리나라의 자유수호와 인류 평화를 위해 희생되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이런 부끄러운 상황에서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보은 사업을 어렵게나마 칠곡군과 왜관수도원에서 하고 있음이 그나마 다행이라 흐뭇하게 생각한다.

작가로서 칠곡을 떠올리게 되면 구상선생을 생각하게 되고, 6·25참전용사의 자식의 입장에서는 호국의 다리로 일컬어지는 칠곡군 구왜관철교(호국의다리), 다부동전적기념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등이 떠오른다.

또한 우리 문화와 우리 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입장에서는 매화를 닮은 매향마을만 둘러보아도 칠곡이 덕향이 흐르는 옛 문화의 자취가 숨쉬는 곳임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나는 어느 곳, 누구에게라도 칠곡은 애국, 구국, 독립운동의 자취가 남아 있는 ‘호국의 고장’이자, ‘덕향의 고장’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칠곡에서 온 감동의 두 글을 보면서 칠곡은 우리 역사에 가장 아픈 상처를 치유하하면서 소리 없이 국격을 높여 가는 ‘보은(報恩)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를 다른 지역에서도 본받고, 아니 국가 차원에서 헤아려 보은사업이 꾸준히 이어지길 희망해 본다.

스마트뉴스 편집국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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