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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이성원의 철학에세이

2007년 06월 07일(목) 12:33 [스마트뉴스]

 

 

이성원

본지 편집국장
경북 구미 출생
계성고교 졸업
경북대 철학과 졸
경북일보 사회부
기자 역임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쉽게 말하면 네 주제 파악을 하라, 즉 '네가 너 자신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라'는 말이다. 너의 무지(無知)를 알아 '무지의 지(知)에 이르러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혹자는 소크라테스적 농담으로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 파악을, 수학을 풀어 봤으면 '분수'를 알아야 하고 철학을 접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던진다. 우스개 소리같지만 소크라테스를 대변하는 명언이다. 이는 지혜에 대해 모르면서 아는척 하지 말라는 말이다. 지혜를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는 무지를 인정하는 자보다 더 무식하고 건방지다.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자야말로 지혜(Sophia)를 사랑하는(Philo) 학문, 철학(Philosophia)을 할 자격이 생긴다.

<'너 자신을 위해 울라'는 의미와는…>

아테네 청년들과 시민들을 현혹했다는 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진리에 대한 정열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법규"라고 당당히 말하고 독배를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너희들이 집행하고 있는 법이 악법인지 정의로운 법인지를 알라는 메시지를 호소하기 위해 감옥에서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독배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당시 희랍 사회의 합법성(이것이 악법이라는 논의는 별개의 문제다)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이를 초월하는 측면에서 그의 삶과 죽음은 일원화돼 있었다.

당시 소크라테스에게 내린 독배는 '혹세무민'을 앞세워 그의 죄가 아닌 악법이 만들어낸 죄를 뒤집어 씌운 잔이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 돌리소서"라고 기도했다. 예수는 십자가의 잔을 받은 것도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예수는 스스로 메시아(구원자)라고 해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 등으로부터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불경죄로 쓰디쓴 십자가의 잔을 받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현혹죄로, 예수는 불경죄에 해당됐다. 아니 살인죄와 같은 흉악범도 아닌 이들에게 사형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가혹할 정도가 아니다. 정의파는 이 잔이 내려서는 안될 부당한 잔인 만큼 당장 거두어 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잔은 이미 예정된 잔이기에 거부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항상 따르고 있는 신(神) '다이모니온'(daimonion)의 신호(지시)에 따라, 예수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잔을 받아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부터 엄습해 오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고 바로 눈앞에 둔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예수도 십자가를 지기전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이어 성경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